잃어버린 러시아어

러시아국립도서관
지난 수 세기 동안 러시아어는 큰 변화를 겪었다. 소리와 문자의 수가 줄었고 철자법에 바뀌었으며 언어의 표현력은 떨어졌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오늘날 현대의 러시아인 중에 고대러시아어로 씌여진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러시아어는 어떤 변천 과정을 겪어 왔을까?

쫓겨난 문자들

러시아 문자 간소화의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러시아 최초의 문자 개혁은 표트르 1세에 의해 시행됐다. 근대의 철저한 신봉자였던 그는 라틴 문자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문자에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1708년과 1710년 두 차례의 개혁을 단행했다. 새로운 문자는 ‘시민문자(гражданская азбука)’로 불렸다. 표트르 대제가 퇴출시킨 문자는 어떤 것인지 알아 보자.

표트르 1세. 출처: Kunsthalle Hamburg표트르 1세. 출처: Kunsthalle Hamburg

그는 러시아 문자에서 ‘크시(Ѯ)’를 없애고 대신에 문자 두 개를 겹쳐서 해당 음가를 표기하도록 했다(‘кс’). 그리고 /о/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던 두 개의 문자 중 ‘오메가(ω)’를 퇴출시켰다. ‘피타(Ѳ)’, ‘이지차(Ѵ)도 퇴출됐다. ‘말리 유스(Ѧ)’는 ‘야(Я)’로 대체됐는데 1917-1918년 이전까지 일부 간판 표기에서는 여전히 ‘말리 유스’가 자주 보였다.

이 열성적인 개혁가 차리는 러시아 알파벳에서 필요없는 것을 제거하는 동시에 모자란 것을 채워넣었다. 예를 들어, 문자 ‘э(에)’와 ‘я(야)’가 표트르 대제 시절에 공식 도입됐다. 그의 개혁은 문자뿐 아니라 다른 것들에도 미쳤다. 아라비아 숫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표트르 대제 때였으며 단어마다 역점(ударение)을 필수로 찍던 것도 중지시켰다. 미하일 로마노소프의 표현을 빌면, 표트르 대제의 지시로 귀족 나으리 마나님들에 이어서 문자들이 “육중한 외투를 벗어던지고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러시아에서 이용된 키릴 글자들과 글라골 글자들. 출처: Wikipedia.org러시아에서 이용된 키릴 글자들과 글라골 글자들. 출처: Wikipedia.org

러시아어가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정비된 것은 1917-1918년 개혁 이후였다. 1918년 세계 혁명을 꿈꾸던 볼셰비키가 보기에 키릴 문자는 그런 목적의 프로파간다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라틴문자 스타일에 비슷한 문자가 필요했다. 그 결과 ‘아이(I)’,  ‘야티(Ѣ)’와 같은 일부 문자가 추가로 퇴출됐다. 이 문자들이 폐지된 후 한 동안 혼동이 있었다. 과거에 발음은 같고 모양은 달랐던 단어들(예로, ‘전쟁 없는 상태’ ‘миръ’와 ‘사회’를 의미하는 ‘мiръ’)을 이제는 구분할 수가 없게 됐다. 문자가 퇴출되자 정확성도 사라졌다. 예) ‘ѣсть’ (먹다) - ‘есть’ (있다), ‘ѣли’ (먹었다) - ‘ели’ (나무), ‘лѣчу’ (난다) - ‘лечу’ (치료한다), ‘вѣдение’ (지식) - ‘ведение’ (동행, 배웅), ‘нѣкогда’ (언젠가) - ‘некогда’ (시간이 없다), ‘прѣние’ (부패) - ‘прение’ (분쟁), ‘вѣсти’ (뉴스) - ‘вести’ (동행), ‘мiр’ (우주) - ‘мир’ (전쟁의 부재).

사람들은 그런 변화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작가 이반 부닌의 말을 들어 보자. “대천사 미카엘의 지시에 따라 결코 볼셰비키의 철자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지금까지 사람의 손으로 이런 철자법은 단 한 번도 쓰여진 적이 없다.”

1918년 이후 'A' 글자가 '수박'(러시아어로 арбуз)을 가르켰다. 출처: Wikipedia.org1918년 이후 'A' 글자가 '수박'(러시아어로 арбуз)을 가르켰다. 출처: Wikipedia.org

18세기에는 나머지 자모의 옛 키릴식 이름들이 폐지됐다. ‘아스(аз)’, ‘부키(буки)’, ‘베디(веди)’는 라틴문자처럼 ‘아(а)’, ‘베(бэ)’, ‘베(вэ)’라는 현대식 이름을 갖게 됐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고대러시아어의 쓰기와 읽기를 상당히 쉽게 만들었다. 문자의 이름이 이제 이름에 해당하는 소리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현재 언어사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간이화 과정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인다. 언어에 강제로 변화를 주면 그때마다 언어의 의미와 힘이 상실된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잃어버린 의미

그 결과 문자뿐 아니라 그 뒤를 이어 러시아어 속에 내재돼 있던 특별한 함의(implication)도 사라졌다. 고대러시아어 전문가들은 이전에는 문자 하나마다 고유한 의미와 이미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다른 유럽어들과 달리 러시아어는 이미지의 언어, 심층 의미의 언어다. 단어 속에 소리만이 아니라 각 글자의 이미지가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мать(어머니)’란 단어를 분석해 보자. ‘м’(글라골문자의 ‘мыслите’)와 ‘감사’를 의미하는 ‘ать’로 나뉜다. 여기서 축자적으로 얻어지는 이미지는 ‘감사하게 생각하시오’다. ‘отец(아버지)’란 단어는 ‘о’(고대러시아어로 문자 ‘он’), ‘т’(문자 ‘твердо’), 그리고 ‘ец’(남성형 어미)로 이뤄져 있고 결과적으로 ‘그는 단호하다’라는 이미지 표현이 만들어진다.

아직도 많은 러시아 가정에서 아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우리의 자랑거리고 딸은 우리의 기쁨이다”라고. 만약 이 두 개념의 ‘숨겨진’ 함의를 찾아보면 이렇다. 아들(сын)은 ‘с’(진실된, 진짜의)와 ‘н’(문자 ‘наш’)로 이뤄져 있고 ‘진정한 우리의’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딸(дочь)은 ‘д’(문자 ‘добро’)와 ‘눈’을 의미하는 ‘오치’(очь)로 이뤄져 있으며 ‘눈의 기쁨’이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고대러시아어의 마녀는 '지식을 가진 어머니'로 해석된다. 출처: El_Yate/ Flickr.com고대러시아어의 마녀는 '지식을 가진 어머니'로 해석된다. 출처: El_Yate/ Flickr.com

알파벳이 변화하고 개별 문자의 이미지가 소실되면서 어떤 단어들은 고유한 의미가 변해버렸다.  예로, ‘ведьма’(마녀)라는 단어가 그렇다. 오늘날 이 단어는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있으며 마법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여자를 의미하다. 하지만 애당초 이 단어에는 부정적인 어감이 없었다. 고대러시아어의 ‘ведьма’는 ‘지식을 가진 어머니’로 해석된다(단어에서 ‘ведь’는 ‘ведать, знать’(알다)이고 ‘ма’는 ‘мать’(어머니)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으며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는 지혜로운 여인을 과거에는 ‘베디마’라 불렀다.

단어뿐 아니라 알파벳에도 의미가 숨어있다고 주장하는 언어학자들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알파벳의 의미를 해석하면 하나의 담화(discours)가 된다. 역사학자 야로슬라프 케슬레르가 해석한 고대러시아어 알파벳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Аз Буки Веди나는 글자를 안다
Глагол Добро Есте문자는 재산이다
Живите Зело Земля지구인들이며, 열심히 일하라
И Иже Како Люди이성적인 사람들에 걸맞게
Мыслите Нашъ Онъ Покои세상의 구조를 인식하라!
Рцы Слово Твердо확신있게 단어를 내뱉어라
Укъ Фърътъ Херъ지식은 신의 선물이다!
Цы Червь Шта대담하게 탐구하라
Еръ Юсъ Ять진리의 빛에 도달하기 위해!

하지만 이 해석이 맞냐 그르냐는 21세기에 사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 한국어로 딱히 번역 안 되는 러시아어 단어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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