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러시아의 무도회

오는 10월 13일까지 차리치노 박물관에서 열리는 ‘대무도회(Большой бал)’ 전시회에서는 러시아 무도회 문화 관련 전시품 460가지를 만나볼 수 있다. (사진제공=마리야 아포니나)

오는 10월 13일까지 차리치노 박물관에서 열리는 ‘대무도회(Большой бал)’ 전시회에서는 러시아 무도회 문화 관련 전시품 460가지를 만나볼 수 있다. (사진제공=마리야 아포니나)

18~19세기 러시아 상류사회 하면 무도회, 기품 있는 초대장, 풍성한 드레스, 보석과 기타 호화로운 삶을 상징하는 것들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차리치노’ 박물관에서 로마노프 왕조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대무도회(Большой бал)’ 전시회를 개최했다.

러시아 최초의 무도회는 17세기 가짜 드미트리(Лжедмитрий)와 마리나 므니셰크의 결혼식에서 열렸지만, 러시아 귀족의 삶에 무도회가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1717년 표트르 대제가 야회(夜會) 개최에 대한 포고령을 내렸을 때부터다. 무도회는 귀족계급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상인 길드나 향우회 사람들끼리도 모여 무도회를 즐겼다. 그 후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는 신분보다는 직업에 따라서, 예를 들면 극장예술가들은 그들끼리, 화가나 건축가들은 그들끼리 모여 대중 무도회를 열기 시작했다.

'무도회'를 뜻하는 러시아어 단어 '발(бал)'이 러시아어에 자리잡은 것은 18세기이며 어원은 프랑스어의 'bal'이다. 무도회에서 춤만 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즐기며 교제하는 장이기도 했고, 기성세대들은 정치 현안을 토론하고 카드놀이를 하기도 했다. 19~20세기 전환기에 무도회에 음악회를 곁들이기 시작해 오페라 가수나 발레무용수들을 초청하기도 했으며 불우이웃 돕기 복권 추첨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무도회 시즌은 늦가을에 시작되어 봄까지 이어졌다. 그중 마슬레니차(러시아 전통 봄맞이 축제) 기간이 무도회 시즌의 하이라이트였다. 여름에도 금식기간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무도회를 즐겼다. 파티와 의상이 화려할수록, 그리고 약혼하는 커플이 많이 탄생할수록 그 해 무도회 시즌이 성공적으로 지나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페테르부르크에는 황실무도회로 인기 있는 곳이 있었다. 겨울궁전의 니콜라옙스키 홀에서는 무도회 시즌의 서막을 알리는 '대무도회'가 열렸고, 이를 시작으로 에르미타시와 아니치코프 궁전에서 '중무도회', '소무도회'들이 개최됐다. 여름에는 페테르고프나 차르스코셀스키 궁전으로 무도회객들이 몰렸다.

니콜라이 2세의 당숙이었던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1866~1933)은 무도회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했지만, 사실 비용은 그리 크게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별히 뭔가를 사거나 누군가를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 포도주는 황실영지관리국이 맡아 공급했고, 꽃은 궁정청이 소유한 수많은 온실에서, 오케스트라는 평소 궁내부가 관리해왔다."

무도회 소집

'부채 언어'

18세기 상류사회에서 사용했던 은밀한 '부채 언어' 표현 몇 개를 알아 보자.

부채를 펴 부채질을 한다 – "저는 유부녀랍니다."

부채를 접는다 – "관심 없어요."

부채살 하나를 편다 – "친구로 지내요."

부채를 활짝 편다 – "당신은 저의 우상이에요."

무도회가 있기 전 기품이 느껴지는 작은 초청장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초청장을 그리는 경우도 잦았는데 그것은 당시 극장용 포스터를 화가들이 그리던 풍조 덕분이었다.

여자들은 당시 가장 유행하던 패션 잡지들, 주로 프랑스 것을 침거히먄사 무도회를 준비했다. 드레스는 유행에 따라 바뀌었지만, 부채만큼은 언제나 여성들의 필수적인 장신구였다. 춤을 출 때나 추고 나서 땀을 식힐 때도 물론 필요했지만,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얼굴을 가렸다가 보였다가 하며 파트너를 유혹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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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는 유행에 따라 바뀌었지만, 부채만큼은 언제나 여성들의 필수적인 장신구였다.
드레스는 유행에 따라 바뀌었지만, 부채만큼은 언제나 여성들의 필수적인 장신구였다. (사진제공=마리야 아포니나)

무도회 의상에는 꽃장식도 빠지지 않았다. 머리장식이나 코르사주, 드레스 장식으로 이용되거나 그냥 손에 들고 있기도 했다. 18~19세기에는 드레스에 조화 다발을 꽂을 수 있는 작은 꽃병 모양의 보석장식을 달기도 했다.

무도회 수첩(carnet du bal)도 여자들이 무도회에 항상 챙겨 다니는 필수품이었다. 여자들은 이 수첩에 폴로네즈, 마주르카, 카드릴를 함께 출 파트너의 이름을 적었다.

가장무도회

최초의 가장무도회(бал-маскарад)는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를 통치하던 1763년 겨울궁전에서 열렸다. 가장무도회에는 귀족과 이름난 상인이 수천 명씩 모이곤 했다. 19세기에도 가장무도회 전통은 그대로 유지됐다. 가장무도회는 전통적으로 새해 첫날이나 마슬레니차에 열렸다. 당시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은 니콜라이 1세 대공의 아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대공비는 1818년 겨울궁전 가장무도회에서 자신은 인도 왕자로 변장했고, 황후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는 박쥐로 변장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동양이나 역사적 사건은 가장무도회의 단골 주제였다. 예들 들면 1837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불룩한 배와 변발을 한 중국 관리 복장을 하고 '중국 가장무도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유명한 무도회들

대관식 무도회는 특히 화려했다. 예카테리나 2세 대관식을 시작으로 모스크바 크렘린의 그라노비타야 궁 무도회는 다양한 기념행사들을 성대하게 개막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무도회들은 영국, 프랑스 등 외국 대사 환영식과 번갈아 열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1826년 니콜라이 1세 대관식 때는 프랑스 대사로 부임한 라구사 공작 마르몽 원수와 영국 대사로 부임한 데본셔 공작 환영 무도회가 열렸다.

'대무도회' 전시회

오는 10월 13일까지 차리치노 박물관에서 열리는 '대무도회(Большой бал)' 전시회에서는 러시아 무도회 문화 관련 전시품 460가지를 만나볼 수 있다. 무도회 드레스와 의상, 무도회와 춤추는 사람들을 그린 포스터와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볼쇼이 극장의 여러 공연에 등장한 무도회를 다룬 특별 섹션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발레 무대장치와 의상 스케치, 자수 장식을 한 무도회 드레스, 아니면 피에르 카르뎅이 마이야 플리세츠카야를 위해 디자인한 드레스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10개 박물관에서 제공한 전시품들이 출품되었다.

1903년 겨울궁전에서는 그 유명한 '아 라 뤼스(à la russe)' 가장무도회가 열렸는데 이 무도회에는 모든 사람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시대의 의상을 입고 참석했다. 어떤 이들은 집안의 오랜 초상화 속 조상들이 입고 있는 의상을 재연하기도 했고 여자들은 고대 민속 의상을 차려입고 그 위에 사라판(소매 없는 원피스)과 코코시니크(부채모양의 머리 장식)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썼다.

그 시대를 마감하는 최후의 성대한 무도회는 1913년 개최됐다. 로마노프 왕조 탄생 300주년을 맞아 2월 23일 귀족회의 건물의 홀에서 열린 무도회였다. 당시 차르 정부의 총리대신이었던 코콥체프 백작은 300주년 기념행사가 별 감흥 없이 지나갔다고 이후 회고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푹 가라앉아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이 곧 들이닥칠 미래에 대해 의식적인 두려움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지, 세계적 재앙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에 매일같이 온 신경을 쏟았다."

혁명 후 무도회를 비롯한 구(舊)러시아의 모든 전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20세기 예술은 '러시아 무도회'의 아름다운 신화를 이어받아 영화와 음악, 연극 속에서 그것을 재현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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