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작은 우드스탁” - 브이 록스(V-ROX)

(사진제공=얀 셴크만)

(사진제공=얀 셴크만)

한국과 중국, 일본의 유명 인디 음악가들이 V-ROX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비행기로 6,500km 거리다. 반면 일본은 비행기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으며 한국이나 중국은 더 가깝다. 이곳의 해안에는 동해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주위에는 작은 언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극동지역의 자연환경이 펼쳐져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일본식 초밥이나 중국식 쌀밥을,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두툼한 한국식 편수만두(пян-се)를 판다. 그런데 아시아 팝음악은 이곳에서 거의 접할 수 없다. 러시아 대중음악 중에서도 저속한 노래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문화적 '간극'을 매우려고 러시아 록그룹 무미 트롤(Мумий Тролль)의 리더 일리야 라구텐코가 나섰다. 라쿠텐코는 금년 여름의 막바지에 고향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 대만은 물론이고 머나먼 미국 서부 해안의 뮤지션들을 초청해 국제 록페스티벌 '브이 록스(V-ROX)'를 기획했다. 그것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태평양 연안지역의 팝음악 중심지로 만들어 보겠다는 정말 원대한 포부가 아닐 수 없다. 실현 가능한 일인지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라구텐코는 1969년 뉴욕주에서 열린 역사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연상시키는 태평양의 작은 우드스탁, '태평양 블라디우드스탁'을 결국 성사시켰다.

Mumiy Troll "Love Contraband" (동영상제공=YouTube)

극동대학교 학생 야나에게 필자는 아시아 음악에 대해 많이 아는 지 물었다.

"거의 몰라요. 중국 노래는 시장에 가면 들을 수 있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예전부터 중국인이 많이 사니까요. 시장이다보니 시장에 걸맞는 노래들을 들을 수 있죠. 일본 음악은 일본 애니메이션 때문에 좀 알아요. 한국 가수 중에는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를 알아요."

이곳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인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놀랍지만, 오히려 이웃 아시아 나라들에서 러시아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중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표적 그룹인 P.K. 14의 리더 양해송은 자신 있게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와 록그룹 키노의 이름을 댄다. 심지어 자신을 비롯한 중국 뮤지션 세대가 러시아 록을 들으며 컸다고 말한다. 소련에서 록음악은 중국보다 10년이나 일찍 출발했지만 그 열기는 더 빨리 식어버렸다. 현재 러시아에서 록은 변두리로 밀려난 반면 중국에서는 러시아에서 이미 한물간 취급을 받는 노래들에 심취하고 있다.

일본의 일렉트로 록 뮤지션인 다나베 다이스케도 80년대 러시아 록 음악에 경의를 표한다. 그의 입에선 러시아에서도 소수의 록 매니아들만 알고 있는 아방가르드 일렉트로 록 그룹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브이 록스에는 주최측의 예산 부족으로 초대형 스타급 뮤지션을 초청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 인디 음악인 연합 '33그룹'의 공윤영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돈과 예술은 따로 가야 합니다. 미국과 영국은 음악이 죽었고 상업과 스타만 번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록음악의 경우 스타가 없고 모두 동등한 상황에 놓여 있지요.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소통하고 좋은 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구텐코는 다음 페스티벌에 호주 그룹들을 초청할 계획인데 이번에도 스타급이 아닌 인디 음악가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말은 재미를 추구하되 거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Shadow Dance" (동영상제공=YouTube)

브이 록스가 인디 음악에 집중한 덕분에 페스티벌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일본 록그룹 Ego-Wrappin'은 일본 로카빌리 공연을 보여주었다(여러분 중에 일본 로카빌리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국 그룹 Wang Wen은 강렬한 미니멀리즘 기타 노이즈가 들어간 아방가르드 아트 록을 들려줬다. 한국 그룹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Goonamguayeoridingstella)는 아름다운 선율의 70년대 록을 연주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일렉트로 밴드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 이곳의 여러 클럽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페스티벌이 열린 나흘 간 블라디보스토크는 가벼운 쇼크상태에 빠져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항구도시이긴 하지만 외국인들이 몰려오는 것은 아직도 이곳에선 큰 '사건'이다. 한 블라디보스토크 아가씨의 말을 들어보자. "작년 미국과 프랑스 군함이 정박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때 미국 흑인과 사진을 찍어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해안가로 일부러 나갔어요." 이런 도시에 기타와 디제이 리모콘을 들고 세련되고 개성 넘치는 외국 손님이 천 명 넘게 들이닥쳤다고 상상해보라. 나흘 동안 도시의 클럽들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해안가 무대 근처에는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들었다. 굉장히 난해한 음악도 청중은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한 공연이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도시는 축제의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과거에 앨리스 쿠퍼와 라이자 미넬리가 이곳을 다녀간 적도 있지만, 외국 인디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디적 삶의 태도를 접하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Mumiy Troll "Vladivostok 2000" (동영상제공=YouTube)

한편 중앙광장에서 열린 메인 콘서트의 주역은 무미 트롤이었다. 이곳에서 무미 트롤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노래가 돼버린 무미 트롤의 '블라디보스토크 2000 (Владивосток-2000)' 연주가 시작되자, 라구텐코의 목소리는 곧 열광한 관중의 '떼창'에 묻혀버렸다.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정화의 시간이 도래한다. 황홀경에 달아오른 그녀의 온 몸이 전율한다. 그게 2000년의 블라디보스토크다! (Уходим, уходим, уходим! Настанут времена почище. Бьется родная, в экстазе пылая - Владивосток две тыщи!)" 마크 볼란이 이끄는 그룹 T. Rex 수준의 강력한 글램록이다. 무미 트롤은 러시아인뿐 아니라 미국인, 아시아인 모두를 전율시키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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