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디노 흑빵 (사진제공=로리/레기언메디아)
오늘은 가장 널리 알려진 러시아 호밀빵 중 하나인 보로디오 흑빵을 소개한다. 그 다크초컬릿 색과 특유의 시금털털한 맛, 그리고 톡 쏘는 향은 러시아인에게는 어릴 때부터 친숙하다.
거의 100% 호밀가루로만 구워내는 흑빵은 유럽에서는 그렇게 널리 퍼져 있지 않다. 소련 시절에는 심지어 서방은 이런 빵을 구울 수 없다고 선전하기도 했다. 비록 독일인들이 유명한 독일식 호밀 흑빵 '품퍼니켈(Pumpernickel)'을 내밀며 이러한 주장을 비웃을 지라도 말이다. 보로디노 흑빵은 제조상의 복잡함 면에서 품퍼니켈과는 사뭇 다르다.
보로디노 흑빵은 익반죽 빵으로,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호밀가루에 밀가루를 약간 넣어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한 후 일정 온도로 몇 시간을 발효시킨다. 반죽에는 다른 러시아 음식에는 잘 쓰이지 않는 당밀 외에 붉은 호밀 맥아(엿기름) 등 다른 재료들이 더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고수 씨로 향을 내는데 이는 의심의 여지 없는 러시아 고유의 비법이다. 북유럽과 중부유럽서는 빵이 풍미를 더 하려면, 아니스나 캐러웨이를 쓰기 때문이다. 수십 가지가 넘는 러시아 흑빵 중에서도 껍질을 황금빛 고수 씨로 장식한 보로디노 흑빵은 가장 널리 사랑 받는 빵 중 하나다.
보로디노 흑빵의 유래에 관한 설들 중 가장 낭만적인 이야기는 고수 씨와 연관이 있다. 둥근 고수 씨는 보로디노 전투에서 머스킷 부대를 이끌고 공세전을 펼치던 용맹스런 투치코프 장군을 비명에 가게 만든 나폴레옹군의 산탄(포도탄) 알과 비슷하게 생겼다. 장군의 미망인은 들판에서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하자 그가 전사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수도원을 짓고 수도원장이 됐다. 수도원에 딸린 제빵소에서 굽기 시작해 곧 널리 유명해진 이 빵은 수도원이 있는 모스크바 교외의 모자이스크에서 곧 모스크바로 전해져 대도시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됐다. 여기에 따뜻하면서도 청량미를 내는 둥근 고수 씨를 더한 것은 용감한 귀족 장군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다른 설은 주장한다. 저명한 보로딘 교수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누군가로부터 알게 된 현지의 비밀 레시피를 이용해 만든 빵으로 교수의 이름을 따 빵 이름도 '보로딘스키(보로딘식)'가 됐다는 것이다. 보로딘 교수는 뛰어난 학자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러시아 오페라의 걸작들 중 하나인 '이고리 공후'를 쓴 위대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19세기에 날씨가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호밀 같은 전형적인 북쪽 지방 작물을 찾아냈다는 것, 나아가 그것을 재료로 한 레시피를 발견했다는 것은 아무리 이 교수처럼 비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설이 더 있다. 이 설의 지지자들은 보로디노 흑빵이 소련 시절 모스크바 제159 제빵공장에서 일하던 두 명의 라트비아인 제빵사 스프레제 '동지'와 자키스 '동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설을 뒷받침해주는 사실은 1920년대에 보로디노 흑빵을 구웠던 곳은 모스크바뿐이었고, 또 이 시기에 이 빵이 문헌자료에서 광범위하게 언급되기 시작했으며 다름 아닌 스프레제와 자키스의 레시피가 소련 표준 요리법 목록에 등재되어 보로디노 흑빵이 전국으로 퍼졌다는 사실이다.
스프레제와 자키스가 어디서 이 요리법을 알아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레시피를 발명하는 데에는 독일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모스크바는 물론 러시아를 통틀어 제빵업에는 전통적으로 독일인들이 종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라트비아인 제빵사들이 독일인들에게 흑빵 만드는 법을 배운 후 나름대로 변형시키고 개선해 보로디노 흑빵을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로디노 흑빵의 미스테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럼 이제 어떤 음식과 어울리는지에 관한 얘기만 남았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점심 식탁에는 항상 수프가 나온다. 보로디노 흑빵은 가장 인기 있는 수프이자 맛도 그와 비슷하게 시큼하고 달적지근한 보르시 수프와 찰떡궁합이다. 두 음식의 시고 단 맛이 기막히게 어울려 맛을 배가시킨다. 보드카 안주로도 나쁘지 않은데, 빵과 마찬가지로 고수 씨가 들어가는 러시아식 염장 청어살 요리에 곁들이면 특히 좋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인들이 보통 아침에 마시는 진한 홍차에 곁들여 아침식사로 먹는 것도 좋다. 어디에나 어울리면서 베일에 싸인 과거와 수수께끼 같은 운명을 가진 빵, 그 이름 하여 보로디노 흑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