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일러스트=나탈리야 미하일렌코)

(일러스트=나탈리야 미하일렌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М. Барышников)는 현재 서방에서 가장 유명한 러시아 발레리노다. 그는 소련의 리가에서 태어났고,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라고 발레리노가 됐지만, 오래 전부터 자신을 미국인이라 여기고 있다.

지금으로 꼭 40년 전인 1974년, 캐나다 순회공연 중이던 바리시니코프는 소련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도주했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가짜 흔적을 남기고, 약속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던 자동차를 타고 사라진 그의 망명 이야기는 한 편이 추리소설과도 같았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예술적인 이유로 망명했다. 바리시니코프는 레닌그라드에서도 유명인사이자 성공한 예술가였지만, 소련과는 다른 발레를 원했다. 좀더 자유롭고 현대적인, 소련스럽지 않은 발레였다. 창작의 자유가 부족했던 것이다.

바리시니코프가 미국으로 망명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에서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이오시프 브로츠키(И. Бродский, 미국으로 망명한 소련 시인, 1987년 노벨문학상 수상)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알콜중독자가 됐겠지." 1970년대에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이런 운명에 처했다. 시인, 음악가, 연출자들이 술에 빠져 시와 연주, 연출을 그만둬버렸고 소련 후기의 숨막히는 분위기에 저항할 힘도 없었다.

반대로 바리시니코프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무엇이 되었을지 알 수 없다. 바리시니코프 본인은 절대로 발레리노는 되지 않았을 것이며, 아무래도 법률가나 사업가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으로 망명한 후, 그는 꿈을 이루어 최고의 배역들을 맡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팝스타가 됐다. 현재 그의 유명세는 발레계를 훌쩍 넘어섰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TV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 출연했고 이를 계기로 한 번도 발레를 본 적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또 한 명의 러시아계 미국인인 작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С. Довлатов)가 바리시니코프 현상에 대해 잘 설명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뉴욕 퀸즈 블러바드 근처의 생활용품점에 들렀어요. 그리고 벽에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거대한 사진이 걸려있는 걸 봤죠. 아무 설명도 없이 그의 모습만 나온 사진이었어요. 그 순간 유명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됐죠! 자기 얼굴이 생활용품점에 걸려있는 거에요. 오페라 극장 로비도 아니고 패션 잡지 편집실도 아니고, 바로 생활용품점에요. 그리고 모두가 그 그림을 알아본다는 걸 확신하는 거죠."

물론 화려한 패션잡지들도 그에게 무관심하지 않다. 그의 안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사생활과 세속적인 삶에 대해서는 수많은 기사가 난다. 제시카 랭, 라이자 미넬리와의 연애, 자동차, 여행, 사업에 대해서 말이다.

다른 슈퍼스타들과 마찬가지로 바리시니코프에게도 상류층 팬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스타가 그렇듯, 그는 그런 팬들에게 조금 너그러워진다. 어느 날 백악관 파티에서 바리시니코프는 지금은 고인이 된 다이애나비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게 됐다. 다이애나비가 물었다.

"아마도 절 기억 못하시겠죠?"

"무슨 말씀이신지요, 왕세자비님?"

"결혼하기 전에 코벤트 가든(런던)에서 하신 공연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다 봤어요. 그러다 어떤 날은 다른 팬들하고 같이 연극이 끝난 다음 나오실 때까지 기다렸어요. 사인까지 해 주셨는걸요."

"제가 뭐라고 썼나요?"

"성만 쓰셨어요. 그때 많이 바쁘셨던 것 같아요."

바리시니코프는 자기 발레단을 갖고 있으며, 성공적인 사업을 경영하고 있다. 심지어 의류와 향수 브랜드 '미샤(Миша - 미하일의 애칭)'도 있다. 또 그는 오랫동안 뉴욕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루스키 사모바르'의 공동 소유자이기도 했다. 이곳은 80년대부터 쭉 러시아 이민자들의 모임장소가 되고 있다. 지식엘리트들(브로츠키, 도블라토프)부터 브라이턴의 불량소년들과 갱들까지 다양한 부류가 모인다.

한번은 바리시니코프가 지인과 '루스키 사모바르'에 앉아 있을 때 옆 자리에서 갱단처럼 보이는 한 무리가 소란을 피우며 놀기 시작했다. 지인은 짜증을 냈지만 바리시니코프는 웃으며 말했다. "놀게 내버려 둬. 괜히 건드렸다가 총에 맞을 수도 있어. 너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니지만, 내가 죽으면 슬프지 않겠어?"

냉소적이지만 맞는 말이다. 바리시니코프를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는 국민적 보물, 동시에 여러 나라의 국민적 보물이니까.

This website uses cookies. Click here to find out more.

Accept cook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