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불가능한 러시아어 단어 ‘포실로스티’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어느 나라 말이나 마찬가지지만 러시아어에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개념들이 존재한다. 이들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그런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포실로스티(пошлость)’다.

러시아 출신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일찍이 20세기 중반에 한 편지에서 러시아어 단어 '포실로스티'는 번역이 없이 그냥 라틴문자 'poshlost'로 자역(字譯, transliteration)하여 전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그로부터 반세기 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다. '위키피디아' 영어판은 'Poshlost'라는 표제어 아래 '포실로스티'가 진부함, 사소함, 정신적인 것의 부재, 심지어 성적 방탕함과 관련된 단어라고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오제고프 러시아어 해석사전(Толковый словарь рус. яз. Ожегова)'에서 형용사 '포실리(пошлый)'는 '도덕적으로 저급하다, 비천하고 거칠다'를 의미한다. 한편 19세기에 편찬된 고전적인 '달 사전(Словарь Даля)'은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첫째, 원래 중립적인 뜻의 옛 해석은 '옛 관습처럼 오래된; 고래의, 고대의, 태고적의'를 가리킨다. 둘째, 부정적 색채의 새로운 해석은 '진부한, 잘 알려져서 싫증난, 관습에서 벗어난; 품위 없는, 거칠고 단순하고 저급하고 천하고 조야한 것으로 간주되는; 천박한, 하찮은'을 가리킨다.

나보코프는 이 개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포실로스티는 분명하고 적나라한 평범함일 뿐 아니라, 주로 그릇되고 허위적인 중요성이자 가짜 아름다움이며, 가짜 지성, 가짜 매력이기도 하다. 뭔가에 '포실로스티'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우리는 단순히 미학적 판단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진실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포슬리'할 수 없다."

이 모든 정의들은 이중성을 띠고 있다. 어떤 정의에서는 도덕적 '저급성'이, 다른 정의에서는 미학적 '저급성'이 두드러진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미학적 측면에서 원시적이고 조악하고 둔감한 뭔가를 흔히 저속하다고 말하면서 무엇보다도 몰취미를 넌지시 암시하곤 한다. 하지만 취미의 개념 자체는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취미는 제각각(На вкус и цвет товарищей нет)"이라는 러시아 속담이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취미와 '나쁜' 취미가 있다고 확신한다. 예를 들면, 웨딩카 보닛 위에 사치스러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걸터앉은 인형 같은 외모의 신부들을 보면 사람들은 대개 '포실로스티'라는 딱지를 갖다 붙인다.

그리고 여기서 '진실성'과 '정직성'에 관한 나보코프의 고찰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포실로스티'는 독자적인 미적 경험이 없으면서도 '고급' 취향이 있는 척하고 실제로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따라서 서툴게 흉내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포실로스티'는 '천박함'과 구별되는데, 천박함은 미적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미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재하는 '진정한 몰취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의 미적 기준은 일반적인 '고상한' 모델들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소박한' 원시주의 화가들의 회화는 '포실로스티'가 전혀 아니다.

그러나 교육수준(미학적 교육 등)이 높다고 포실로스티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어떤 평가를 내릴 때 자신의 독자적 견해를 따르지 않고 표준에 의지한다면, 이것도 역시 포실로스티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여러분이 속하고 싶어 하는 집단, 즉 준거집단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고급 예술에 탄복하는 것("역시 말러야! 그래 조이스야!")은 본질적으로 포실로스티에 다름 아니다. 이런 종류의 '포실로스티'를 가리키는 특별한 용어로는 '스노비즘(снобизм, 속물주의)'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스노비즘'이 과거에는 전통적으로 부정적 색채를 띠었지만, 현재 통용되는 러시아어에서는 '엘리트주의(элитарность)'나 '명성(престижность)'처럼 긍정적 뉘앙스의 의미를 띠는 어휘군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패션잡지 중 하나가 '스놉(Сноб, 속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포실랴크(Пошляк)'라는 이름의 잡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한편 벌써부터 현대의 문화인류학자들은 지나친 포실로스티 '까기'가 그에 못지 않은 포실로스티 '옹호'로 나타날 수 있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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