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샐러드, 불꽃놀이와 함께 하는 러시아 새해맞이

(사진제공=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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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산 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최근 돌아온 영국인 기고가 리처드 윈터바텀이 말하는 러시아와 영국의 축제 시즌 비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에 고향 영국을 찾은 필자는 기대했던 것처럼 가는 곳마다 호랑가시나무와 덩굴 장식, 꼬마전구, 전나무, 모루 장식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다가오는 신년을 준비하다보니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과 지난 몇 년간 익숙해졌던 것을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다.

기본적인 것부터 짚어보자.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에게 12월 25일은 아무 의미 없는 날이다. 러시아의 평범한 이반(Ivan)들에게 이날은 주말이 아니고서야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근무일이다. 지난 해 12월 25일 필자는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해 버스 기사 300명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 필자는 종일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딱 맞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인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슬라이드로 넘어갈 때까지 아무도 내 모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뭐라 투덜대는 소리들과 누군가 한 명이 한 맥빠진 'Happy Christmas'가 내가 그날 답으로 들은 전부였다. 이는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러시아인에게 겨울 축제는 새해 전야가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날이 러시아의 축제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영국의 신년맞이 축제인 호그마니는 잊어라. 러시아에서는 '노비 고드(Новый год)'이라고 한다.

외국 산타

러시아의 산타인 '데드 모로스(Дед мороз, 서리 할아버지)'는 전통적으로 털 달린 파란 외투 차림이지만, 요즘은 빨간 옷을 입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러시아 아이들은 산타와 데드 모로즈를 헷갈리지 않는다. 특히 데드 모로스가 산타보다 키가 크고 날씬하며 요구사항이 많다는 점, 그리고 커다란 지팡이를 갖고 다닌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아파트가 압도적으로 많아 굴뚝을 찾아보기 힘든 러시아 도시에서 데드 모로스는 굴뚝으로 몰래 집에 들어가는 산타와는 달리 당당하게 나무 지팡이로 현관문을 두드린다. 그렇게 파티에 끼어들어서는 선물을 받으려면 노래를 하거나 시를 읊어달라고 요청한다. 데드 모로스 옆에는 엘프 도우미가 없다. 대신 그의 손녀로 추정되는(다른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된 것이냐는 질문은 금기),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스네구로치카(снегурочка, 눈아가씨)가 있다. 하늘을 나는 루돌프 역시 잊어도 된다. 트로이카(말 세 마리가 끄는 썰매)가 제 역할을 다 할 테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상의 동물은 필요 없다.

크렘린의 종

러시아 사람들은 신년에 TV 특집 연설방송도 꼭 챙겨본다. 우리가 아는 영국 여왕의 이른 오후 연설만큼은 진지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술잔을 든 충실한 러시아인들은 (후트내니보다 가볍고 유로비전보다는 진중한) 신년 쇼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정에 크렘린 종이 울리기 직전 채널을 돌려 대통령의 신년연설을 시청한다.

러시아에 시간대가 아홉 개나 있다는 것은 새해를 여러 번 맞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 예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나는 친구들과 노보시비리스크 시간으로 한 번, 3시간 후에 모스크바 시간으로 또 한 번 새해를 맞았다.

러시아의 전통 신년맞이 상차림에 칠면조는 등장하지 않는다. 저녁의 주요 요리로는 칠면조가 아닌 올리비에(러시아식 샐러드)가 올라온다. 올리비에 조리법은 다양하지만, 깍뚝썬 당근과 감자, 오이, 달걀, 고기에 마요네즈를 듬뿍 넣어 섞고 향신료인 딜을 위에 얹는 것이 기본이다. 자정부터 찬 음식과 샐러드, 피클을 차리기 시작하는데, 올리비에는 그중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인다.

이 음식들은 모두 거품이 많이 올라오고 양도 많은 '소벳스코예 샴판스코예(소비에트 샴페인)'와 함께 즐긴다. 이 샴페인을 개봉할 때 그 플라스틱 마개가 상당히 빠르게 날아가는데, 거기에 턱을 맞으면 몹시 아프다고 그 일을 경험한 불운한 필자의 친구가 말해줬다.

음악 같은 불꽃놀이

크리스마스 하면 캐럴을 빼놓을 수 없듯 러시아 신년에는 살류트(салют, 불꽃놀이)가 필수다. 내가 모스크바에서 신년 이브의 불꽃놀이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꼽는 장소는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앞의 '참새언덕'이다. 이곳에서 모스크바 시내 상당 부분이 내려다보이는데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흥청망청 술에 취한 무분별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기들끼리 쏘아 올리는 불꽃 쇼도 즐길 수 있다. 스파클러 정도의 불꽃놀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필자는 내 뒤에서 불꽃놀이용 화약 1배럴이 통째로 터지는 바람에 급히 몸을 옆으로 날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위험하지만 재미있다.

그러나 영국과 러시아의 새해맞이에는 공통점도 많다. 영국인들처럼 러시아인들도 욜카(елка,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다. 그리고 비록 러시아식으로 바뀐 것도 있지만(눈 덮인 근엄한 영국 교회들이 러시아인들의 마음에 들기는 어렵다), 연하장의 삽화 중에도 겹치는 게 많다. 그리고 이때 두 나라의 상점들도 모두 사람들로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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