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남부 ‘부토보 제2공원’ 지역의 아파트 건설현장. 모스크바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은 전쟁이다. 평생 벌어도 못 산다는 말이 나오고 그래서 부동산 사기도 종종 벌어진다.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모스크바의 가을은 비와 낙엽만의 계절이 아니다. '아파트 사냥'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방학이 끝나고 업무와 학업을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인 만큼 학생·외지인·외국인 모두 살 곳 마련에 한창이다. 특히 월세나 전셋집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지만 자기 집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결과 부동산 시장에선 별별 일이 다 벌어진다. 요즘 풍속도를 들여다본다.
니즈니 노브고로드 출신의 안드레이(29)는 최근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 10여 년 전 모스크바로 유학 온 그는 대학 시절엔 기숙사 생활을 했고, 졸업 후에는 집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그는 "그 길로 모험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는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방을 얻고, 부동산 중개인과 주인에게 돈을 주고 이사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혼비백산해서 잠에서 깼다.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놀라기는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낯선 부부는 자기가 주인이고 휴가에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집을 내놓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다고 했다. 안드레이는 바로 부동산 중개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계약서를 만든 회사는 유령회사였다. 안드레이는 "전부 사기였어요. 그날로 쫓겨났고 ... 우리는 돈만 날리고 끝난 겁니다"라고 허탈해했다.
안드레이만 이런 사기를 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러시아에서 부동산은 '스보이 우골(자신의 공간)'이라 불리는 아주 귀중한 재산이다. 러시아처럼 내 집(그것이 어떤 집이든)이 행복한 삶을 위한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하며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집 사기가 너무 힘들다 보니 자연히 집을 둘러싼 온갖 현상이 벌어진다.
우선 모스크바 아파트는 비싸다. 아파트 ㎡당 가격이 모스크바의 평균 임금보다 3배 높다. 물가가 최소 1~2%, 최대 10%까지 하락했지만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모스크바 근교에서는 35㎡ 이하 방 한 칸짜리 아파트를 550만 루블(17만 달러) 이하론 찾을 수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방 한 칸짜리 아파트는 공급보다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NDB-부동산'에 따르면 2013년 원룸에 대한 수요가 2012년보다 20%나 올랐다. 원룸은 주로 서민층의 수요가 몰린다.
'비즈니스 라이프' 자료에 따르면 평균 소득 러시아 최고인 모스크바 시민의 월평균 수입은 5만 루블(약 140만원). 그 월급의 일부를 20~25년간 모아야 집 한 채를 겨우 장만할 수 있다. 수입을 모두 내 집 마련에 쏟는다면 약 8년이 걸린다. 그러나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지 않고, 먹고살 다른 수입이 필요하니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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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인이 손님들에게 집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이타르 타스) |
매년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부동산 시장 분석가들은 예상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또는 얼마나 달랐는지를 분석하고 현 상황을 평가한다. 한 포털사이트 '루스이포테카(러시아 모기지)'에 따르면 거시경제 변화에 따라 올해 러시아 주택시장은 스테그네이션에 빠져들었다.
모스크바 최대 부동산 회사 '인콤'의 분석팀장 드미트리 타가노프는 "세계 경제위기를 야기한 미국 및 유럽발 위기 요인이 사라질 때까지는 시장의 균형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2008년 위기가 10~15년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 5~10년간 부동산 시장은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가노프가 말하는 '시장의 균형'은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음을 뜻한다. 이 때문에 이론상으론 소비자의 심리나 구매 수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보통 사람들은 실제론 이번 가을에도 주택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은 다양하다. 몇 년 전 가격 상승의 주 원인은 신규 건설이 저조해 빚어진 주택 부족이었다. 반면 오늘날 가장 큰 위험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장 요인도 있다. 신축 공사가 늘면서 환율과 공사 비용, 부대 서비스 비용이 덩달아 상승했다. 이뿐만 아니라 금리와 아파트가 ㎡당 가격까지 상승했다. 부동산 시장 분석센터 '부동산 시장 지표'에 따르면 올가을 초 모스크바 아파트 ㎡당 가격은 5062달러였다. 이미 몇 년 사이 ㎡당 건설비 5000달러를 기준으로 10% 선에서 오르내렸다. 그러나 이런 지표는 소득이 높지 않은 일반 주택 구매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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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내 집 마련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집을 갖고 재미를 보거나 사기를 치는 범죄행각이 나타난다. 마리나는 "200만 루블(약 6000만원)에 방 한 칸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중개업자들이 내 이름을 결핵환자 목록에 넣었죠. 법에 따라 결핵환자들은 무료 아파트를 제공받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나는 이미 아파트를 받았어야 하는데 2년 넘게 아직 말 뿐이에요"라며 "그 사기꾼들을 이제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마리나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 역시 사기에 가담했다는 의심이 생긴다.
그래서 부동산업자들은 이렇게 가끔 사기를 치고, 이미 계약이 된 집이 다시 나오기도 한다. 까다로운 주인은 하루 건너 한 번씩 고장 내지 않는지 감시하러 온다. 있지도 않은 아파트를 낀 사기 행각, 이중 계약, 독거 노인의 아파트 강탈 등 다양한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정상적으론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담보대출이 있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대출받기도 어렵거니와 13%라는 엄청난 이자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차 객차 건설 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은 "담보대출을 갚으려면 가족 수입의 70%를 부어야 하기 때문에 저축도 안 되고 휴가비를 모을 수도 없다"며 "휴가를 언제 갔는지 생각도 안 난다"고 말했다. 그는 "강하고 건강하며, 밤낮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나 긍정적인 사람들에게만 대출을 추천하겠다"며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런 사람을 위해 전문 융자 브로커도 있다.
게다가 대다수의 모스크바인은 아파트 전·월셋값으로 먹고산다. 원룸 월세 최저가는 3만~3만5000루블(1000~1200달러)이니 방 두 개 아파트면 발 펴고 살 수 있다. 기자가 직접 20명의 '임대로 사는 사람'에게 "왜 임대를 주느냐"고 물었다. 5명은 자녀를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3명은 외국에 살기 때문에, 1명은 노부모 봉양, 2명은 유럽의 병원비 지불, 6명은 은행 대출 갚기, 나머지는 여행하기, 옷 사기 같은 것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