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시비르스키 극장에서의 '호두까지 인형' 발레
알렉산더 크랴제프/ 리아노보스티1. ‘호두까기 인형’을 발레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19세기 말 관료이자 황제 극장의 감독을 지내던 이반 브세볼로즈스키의 머리에 불현듯 떠올랐다. 그는 작은 소녀와 호두까는 도구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발레 무대를 그려보았다. ‘호두까기 인형’은 표트로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욜란타’ 공연이 끝난 자리에서 즉시 공연됐다. 관객들은 한 공연에서 위대한 작곡가의 환상적인 곡들을 잇달아 감상할 수 있었다.
출처: 리아노보스티
2. <호두까기 인형>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1892년 12월 18일에 초연되었다. 황실 소속 발레단의 시어터 스쿨 학생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이들의 배역은 나이에 너무나도 적합한 '트리에 매달린 아이들'부터 주인공까지였다. 이날 어린 연기자들은 차이콥스키로부터 초콜릿 한 상자씩을 선물로 받았다. 이 발레는 어린 무용수들을 큰 무대로 데뷔시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며 성장해갔다.
출처: 리아노보스티
3. 마리헨, 마리, 마샤...... 발레가 꽃을 피우던 시절 마법에 걸린 왕자를 구한 여자아이의 이름은 이렇게 다양하게 불렸다. 동화 원작에서는 독일 여자아이였다! 주인공 소녀 인형의 이름은 원작에서는 심지어 클라라였다. 여자 아이 이름이 러시아 발레 무대에서 마샤로 변한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애국심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출처: 리아노보스티
4. 초연에는 또 하나의 '첫 출연'이 등장했다. 러시아에서는 처음 보는 악기인 첼레스타였다. 겉모습은 작은 피아노이지만 금속 현 대신에 금속 울림판을 때려 연주하는 이 악기는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파리에서 직접 들여 왔고 초연에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공연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계획은 성공했다.
출처: 니콜라이 사호프스키/ 리아노보스티
5. '녹아내리는 듯한' 첼레스타의 음색은 가장 '어른스럽고'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춤을 출 때 울려 퍼진다. ‘호두까기인형’ 2막의 주요 장면인 '별사탕 요정의 춤'이다. 심지어 백 년 전에도 이 별사탕 요정의 춤을 추는 무용수는 16회전 푸에테를 춰야 했다. 이 배역으로 러시아 무대에 첫선을 보인 무용수가 이탈리아 프리마돈나 안토니에타 델 에라였다.
출처: 이고리 루사크/ 리아노보스티
6. 러시아식 카니발이었다. 고전 발레 ‘호두까기 인형’에 등장한 의상은 약 150벌이다. 꽃다발, 장난감, 병사, 눈송이, 요정, 쥐 캐릭터 등이 등장한다. 어린 무용수들에게 발레 의상을 입히기 위해 50명이 넘는 무대 직원들이 동원된다. 색종이 가루만도 수 십 kg이 소요된다. 눈송이 춤을 효과적으로 연출하려면 최소한 20kg이 필요하다.
세르게이 솔로비요프/ 리아노보스티
7. 유리 그리고로비치 예술 감독이 볼쇼이 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연출하게 되면서 이 작품은 20세기의 고전 발레가 되었다. 마샤와 왕자의 2인무를 ‘꾸미는 감정’이 아니라 ‘진짜 감정’으로 춰서 이 춤의 전형으로 등극한 무용수들은 러시아 발레의 스타 커플인 예카테리나 막시모바와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인데 이들은 실제로도 부부였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예술 감독은 바실리예프가 추는 호두까기 인형을 두고 “환상적으로 완벽한 역할을 해낸다”고 평가했다. 막심모바는 문자 그대로 눈송이 역할에서 마샤 역할까지 발전하여 성장한 무용수였다.
출처: 이고리 루사크/ 리아노보스티
8.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혁명 뒤 ‘호두까기 인형’은 수출 상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 고전발레를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받는 마리우스 페티파의 훌륭한 공연 실황 녹화영상 27개 중에서 소위 세르게예프 컬렉션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에 포함되었다. 마린스키 극장 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니콜라이 세르게예프는 귀중한 자료를 가지고 러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현재 그 악보들은 하버드 대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러시아 발레는 전 세계로 전파되게 되었다.
출처: 세르게이 솔로비요프/ 리아노보스티
9.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정말로 장수 레퍼토리이다. 볼쇼이 극장에서만 500회 이상 공연되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무용가 겸 안무가로 활동했던 조지 발란친(조지 발란신)이 1954년에 뉴욕시티 발레단(New York City Ballet)을 위해 이 작품을 기획하면서 이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93년에 이 작품은 각색되어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조지 발란친 발레 학교에서 공부했던 유명한 배우 맥컬리 컬킨이 왕자 역을 맡았다.
10. 조지 발란친이 연출한 이후에 호두까기 인형 신드롬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크리스마스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가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모리스 베자르, 메튜 본 등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작품으로 탄생하여 여러 나라의 무대를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