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이사’는 소련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집 또는 다른 건축물을 통째로 이전해왔다. ‘건물 옮기기’ 방법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이탈리아 엔지니어인 아리스토텔레스 피오라반티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가 1455년에 볼로냐의 성모마리아 성당의 종탑을 10미터 이상 이동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건물 옮기기 기술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소련에서였다.
1935년 수도인 모스크바에 새로운 사회주의적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모스크바 종합 재건 계획이 수립됐다. 처음 재건에 들어간 것은 고리키 거리(현 트베르스카야 거리)였다. 고리키 거리 양쪽으로 서있는 건물들의 파사드 높이를 맞추고 스타일을 통일시킴으로써 거리를 곧게 그리고 더 넓게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당국은 크렘린으로 통하는 이 거리가 웅장한 모습을 갖기를 바랬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지도 상의 고리키 거리 양편으로 붉은 직선이 그어졌다. 이 붉은 선을 넘어 ‘튀어나온’ 건물들은 철거 또는 이동이 지시됐다.
원한다면 푸른 바다에서도
파란 하늘에서도 항해를 할 수 있어!
원한다면 집도 옮길 수 있어.
집이 방해가 되면 말이지!
이 짧막한 글에서 아동작가 아그니야 바르토는 1937년 10월에 있었던 세라피모비치 거리의 한 건물 이동 광경을 묘사했다. 이 건물은 모스크바에서 여덟 번째로 이동된 건물이었는데, 단순히 장소를 이동시키는 것뿐 아니라 거의 2m를 지상에서 뛰우는 작업을 했다.
1937년 9월 27일자 이즈베스티야는 이렇게 썼다.
“세라피모비치 거리에서 5층짜리 석조건물을 기중기로 들어올리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며칠내로 굴대에 올려진 이 집은 레일을 타고 이동해 새로운 지반에 올려지게 된다. 이동 중의 건물에서도 전화,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 모든 생활이 정상적으로 가능하다. 이와 동시에 고리키 거리 24번지 건물을 50미터 이동하는 작업이 준비 중이다.”
기사에서 언급한 건물의 주민인 알렉산드르 발틴(60세)은 로시스카야가제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두달에 걸쳐 건물을 이동시켰다고 모친이 얘기하곤 했다. 집이 흔들린다거나 진동이 느껴지는 경우도 없었고 창문도 덜컹대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도 밤에 깨지 않고 잘 잤다고 하니까. 엔지니어들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보장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동 중에도 집안 모든 편의시설이 작동했다. 불도 들어오고 상수도와 전화도 됐다. 현관에는 목제 계단을 달아서 건물과 함께 움직였지요.”
또 하나의 운좋게 이동된 건물은 1907년에 지어진 구(舊) 사바 여인숙으로 현재 주소지는 트베르스카야 6번지다. 이 건물은 고리키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 파사드는 모던과 바로코적 요소가 혼합된 유광 타일로 장식돼 있었다. 하지만 수도 재건 계획이 진행되면서 이 건물도 이동시켜야 될 필요성이 생겼다. 그 결과 과거 이동된 그 어떤 건물보다 더 무거운 이 건물(2만3천 톤)을 이동시키기로 결정됐다.
집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렴 영화의 장면. 출처: youtube.com
준비작업에 4개월 이상이 걸렸지만, 정작 건물을 이동하는 데는 하룻밤밖에 걸리지 않았다. 건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불안한 나머지 이동할 때 사전에 고지를 해달라고 했지만 당국은 주민들에게 일부러 잘못된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어느날 밤 이동 작업을 실시했는데, 얼마나 조용히 이동이 끝났는지 대부분의 주민이 아침에야 창밖 풍경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심지어 떠도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가 저녁에 큐빅으로 쌓아놓은 탑이 한밤의 이동을 겪고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고도 한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트베르스카야 거리와 마모놉스키 골목 모서리에 위치한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안과병원을 이동시킬 때 부딪혔다. 건물을 자리에서 더 안쪽으로 밀었을 뿐 아니라 97도 방향을 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건물의 파사드가 마모놉스키 골목 방향으로 나게 됐다. 이 경우에도 이동 중에 건물 안에서 정상적으로 진료가 진행됐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의사, 환자가 그대로 있었고 수술도 진행 중이었다. 현재 이 건물에는 아직까지도 안과가 들어서 있다.
건물을 옮기기 전에 지반에서 분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건물 주위로 빙 둘러 구덩이를 판 후 강삭(綱索)을 이용해 건물을 지반에서 “잘라냈다.” 그후 특수 빔으로 건물을 고정하고나서 차대를 만든 후 그것을 특수 굴대 위에 올렸다. 굴대는 사전에 설치해 놓은 레일을 따라 움직었다. 대개는 권양기로 건물을 앞에서 견인했고 기중기로 뒤에서 밀었다. 준비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동 자체는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
이동 작업에는 주로 지하철 터널 굴착시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던 지하철 건설자들이 동원됐다. 수십 년 동안 모스크바에서는 거의 70채의 건물이 이런 방식으로 이동됐다.
‘아르히텍토르’ 통신사의 예카테리나 추구노바 사장은 “우리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이 기술을 현재 해외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뉴스포털 ‘스트라나(strana.ru)’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예로, 독일인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여 오래된 교회를 새로운 장소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정작 기술이 개발된 러시아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기술을 외면해왔다. 이제는 건물을 애써 ‘들어다 놨다’ 하는 것보다 그냥 철거하고 ‘똑같은 것’을 다시 짓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