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한국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 계획은 모든 종류의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데 전제조건이 되는 투명성과 신뢰에 바로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과제는 안보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북한 변화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며, 점진적인 통일의 실질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장차 동북아 안보·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남북 관계의 통제불가능성과 작은 영토에 과도하게 밀집된 군사력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씨앗이다. 점진적으로 정치 대화 수준을 높이고, 핵확산을 막고, 바람직한 대외 환경 속에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정착이 바로 이 과정의 핵심 내용이다.
한반도 신뢰와 투명성 정책의 정치적·법적 기반은 1991년 12월 13일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남북 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1992년 9월 체결된 남북불가침부속합의서이다. 이 문건에는 OECD 국가들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뢰 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유럽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이 정책은 한반도에서도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 정책은 상호 상승작용을 가져오는 투명성의 원칙과 군사 활동 제한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합의서 12-14조는 대규모 군사훈련의 통보 및 통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인사교류 및 정보교환, 직통전화 설치, 투명성 보장 조치 개발 및 이행과 군사적 신뢰조성을 위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다. 열거된 조항들은 충분히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양측이 합의를 통해 그 이행 방법만 마련하면 된다.
그러나 한반도에 투명성과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상호 개방성과 신뢰 정책에 기초한 대화의 문화를 조성하려는 양측의 바람과 의지라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는 인내와 정치적 결단력, 외교적 수완이 요구되는 가장 중대한 과제이다. 상대방을 '적'으로 인식해온 지난 수십 년의 관성을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투명성(자발적이고 상호적인 정보 개방성)을 확보하는 데는 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남북 양측을 사로잡고 있는 견고한 정치적 관성 외에도 폐쇄성와 불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북한 체제 자체가 큰 장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보와 경제 부문의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의향을 보인다면, 점진적으로 북한을 대화와 협력으로 마을을 열도록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이행하며, 경제·통상관계와 인적 교류를 점차 발전시킨다는 한국의 새로운 전략적 구상에 담긴 기본 접근방법은 상당히 논리적이다. 바로 이러한 방법을 통해 장차 대화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대화를 지속하는 데 예기치 못한 위협을 막는 상호이해와 신뢰의 '임계 질량'을 만들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훌륭한 예가 될 수 있다. 국가 이해의 상충과 정치적, 전략 지정학적 갈등과 이견에도 불구하고 두 강대국의 경제·통상 의존도는 양국 관계에서 심각한 수준의 공개적인 분쟁을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유례없이 긴밀하고 규모가 크다. "균형 잡힌 상호의존성은 상호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지적했다.
여기에는 '외적' 잣대도 있다. 북한에 대한 사회·경제 발전 지원, 일련의 동북아 에너지·교통 인프라 프로젝트는 경제·인도협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북핵문제 6자회담은 점차 지역적 차원의 안보·협력 체제로 발전할 수 있다.
투명성과 신뢰에 기초한 상호의존만이 남북 대화의 발전과 유지를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호의존성은 그 자체로 양측에 어려운 시험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남북 대화와 협력을 한국과 그 최대 우방국인 미국이 등을 돌리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투명성과 신뢰 정책 역시 갈등과 이견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단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려라'라는 또 다른 한국 속담이 이 정책들의 본질과 성격을 정확히 보여준다. 만약 남한과 북한이 이 정책을 채택하고 상호의존에 대한 다가올 시험을 이겨낸다면, 한반도 문제는 종국에는 해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