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인사 블로그 읽고 '좋아요' 누르면 끝 … 투표 나몰라라

왼쪽은 제도권 야당. 지리놉스키(자유민주당), 주가노프(공산당), 미로노프(정의당) 당수. 오른쪽은 `재야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푸틴 대통령이 제도권과는 잘 지내며, 재야는 인터넷에서만 인기를 끄는 상황을 묘사했다. (일러스트=단 포토츠키)

왼쪽은 제도권 야당. 지리놉스키(자유민주당), 주가노프(공산당), 미로노프(정의당) 당수. 오른쪽은 `재야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푸틴 대통령이 제도권과는 잘 지내며, 재야는 인터넷에서만 인기를 끄는 상황을 묘사했다. (일러스트=단 포토츠키)

갈수록 존재감 옅어지는 러시아 야당 세력

2013년 9월 8일은 러시아의 역대 최대 선거가 있는 날이다. 러시아 83연방주체(행정구역)중 80개 지역에서 지방 선거, 16개 지역에선 의회 선거, 모스크바 시와 모스크바주를 포함한 10개 지역에서는 시장 선거가 있다. 4만4661개 선출직에 10만9000명이 입후보했다.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에선 4만 명이 출마했고 등록된 53개 야당·, 무소속 후보도 다수 출마했다. 1 대 53+α의 대결에서 야당은 얼마나 약진할까.

1999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정권을 잡은 뒤 야권 정치가들은 정치권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당법도 차츰 강화해 창당 요건이 ' 최소 5만명 이상 당원'이 됐다. 그 결과 2000년 초~2011년 총선까지 60개 이상이던 정당 수가 7개로 크게 줄었다. 그 과정에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 당은 2003년부터 하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만큼 '약진'했다.

이 시기 야당은 제도권·비제도권으로 나뉘었다. 제도권 야당은 선거에 참여하거나 등록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정당이며 비제도권, 이른바 재야는 등록되지 않은 정당이나 반정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학자들은 하원에 진출한 세 개의 당을 야당으로 분류한다. 1993년 창당된 러시아 공산당은 '쥐꼬리' 연금을 받고 있는 노령 세대의 옛 소련에 대한 향수를 정치에 활용하는데, 20년째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가 장기 집권 중이다. '러시아 정의당'은 2006년 공산당 표 뺏기를 목적으로 등장했다. 90년 창당된 '자유민주당'은 러시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정당이며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가 만년 당수를 하고 있다. 자민당의 이미지는 '광대'다. 의회에서 툭하면 몸싸움을 벌이거나 집회에서 돈을 뿌리고 집권하면 모든 독신 여성에게 짝을 찾아주겠다는 허황된 공약을 내세운다.

2011년 중반까지 야당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반정부 시위에 고작 수십 명만 나타났다. 이유는 2008년 일부 야권에 자유주의 개혁가로 알려져 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 등장한 것과 어느 정도 관련 있다. 메드베데프도 "자유는 비자유보다 낫다"며 경제 현대화와 부정부패 척결을 내걸어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2011년 9월 24일 '통합러시아' 당 대회에서 메드베데프가 푸틴의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 즉 푸틴 3기 집권을 선언하자 지지자들은 그를 더는 독립 정치인으로 여기지 않고 야권으로 돌아섰다.

2011년 12월 하원 선거는 부정으로 점철됐다. 야권의 옵서버들을 투표장에서 내쫓고 '통합러시아당' 득표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치학자 알렉산드르 키네프와 수학자 세르게이 슈필킨은 '통합러시아당'의 득표율 49%는 15% 높게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 이튿날 모스크바 치스티예 프루디(깨끗한 연못) 역에 반대자 수천 명이 집회를 열고 선관위를 찾아가 따졌다. 그 과정에서 집회는 강제 해산됐고 알렉세이 나발니 등 시위 주도자들은 체포돼 15일 동안 구금됐다. 정부의 대응은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됐다. 나흘 뒤 크렘린궁 앞 모스크바강 건너에 있는 볼로트나야 광장엔 약 15만 명이 모여 부정 선거 반대 집회를 열었다. 자유주의자부터 사회주의자까지,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성 소수자 인권 운동가 등 제도권 야당만 빼고 반푸틴 세력은 총 집결했다.

이런 시위로 선거 결과를 번복할 수는 없었지만 '정당법'이 완화돼 당원 500명만으로 창당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스마트 러시아당' '시민당' '농촌진흥당' '모두에 반대하는 당' 등 53개 정당이 나타나 등록했다.

그러나 일부 야권 인사는 굳이 정당 등록을 하지 않는다. 작가이자 '다른 러시아당' 대표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가 대표적인 예다. 이 당의 원래 이름은 '민족 볼셰비키당'이었는데 과격파로 간주돼 활동이 금지됐고, 리모노프는 불법 무기 소지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규모 집회로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직도 2011년 12월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리모노프는 "7000~8000명이 모이면 불법일지 몰라도 50만 명이 모이면 우리가 곧 법"이라고 늘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지지자는 '전략 31 운동'에 참가한 수십 명에 불과하다. 러시아 헌법 31조 '집회의 권리'를 부각하려는 이름이다.

리모노프의 극단주의 성향과 정치·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는 러시아 자유주의자들의 성향은 전혀 다르다. 그래도 트리움팔나야 광장에 함께 모인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요소는 '반(反)푸틴'이다.

야권은 다양한 문제의 이유를 '푸틴 탓'으로 돌린다. 사회주의자는 빈부의 격차가 불만이다. 자유주의자는 석유·가스 수출로 얻은 이익을 연금이나 보조금 또는 효율성이 의심스러운 공무원 월급으로 '탕진하는' 푸틴에 불만이다. 국수주의자는 푸틴이 미국과 유대인 부자들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화를 낸다. 민주주의자는 러시아가 다시 '강대국'이 되는 것에 반대하고, 공산주의자는 푸틴이 러시아를 서방에 예속시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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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표적 재야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 집회. 이날 나발니에게 5년 징역형이 선고됐다.
지난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표적 재야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 집회. 이날 나발니에게 5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진제공=로이터)

야권은 완전 분열 상태다. 비슷한 시각을 갖는 분파라도 세부사항을 놓고 또 갈라진다. 그래서 야권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는 전혀 높지 않다. 야권 지도자가 자신의 지지자 외엔 사실상 누구도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을 정부는 어느 때고 이용할 수 있다.

야권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정부가 '야권의 영향력'을 인정하게 만들려고 2012년 10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야권 조정위원회 선거'를 했다. 그래서 82만3000여 명이 투표를 했다. 조정위원회는 정부와의 협상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협상은 없었다. 정부가 이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1년 12월 시위'의 충격에서 벗어난 정부는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통합러시아당과 푸틴을 지지하는 수많은 집회가 러시아 전역에서 진행됐다. 그 뒤 2012년 3월 2일 푸틴은 63.6% 득표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물론 야권은 여전히 살아 있다. 푸틴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2012년 5월 6일 야권은 모스크바에서 가두행진을 벌였다. 행진은 볼로트나야 광장의 집회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광장 입구에서 행진을 막았다. 시비가 붙고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번졌고, 폭동죄로 24명이 입건돼 현재 재판 중이다. 그중 경찰 폭행을 시인한 막심 루쟈닌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청년 좌익전선 지도자 세르게이 우달초프는 '5·6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벌써 몇 개월째 가택연금 중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도 '야권의 존재감'에 기여하고 있다. 2013년 7월 18일 키로프시 법원은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많은 러시아인이 날조됐다고 믿는 사건이다. 그의 혐의는 이렇다. 나발니가 2010년 키로프주 니키타 벨리 주지사의 고문이던 시절 국영 기업 '키로프레스'가 소유한 임야 일부를 한 회사에 1480만 루블(45만 달러)에 팔라고 종용했고 그 회사는 이를 사서 1620만 루블(49만 3000달러)에 되팔았다는 것이다. 옹호자들은 "당시 나발니는 '키로프레스' 회장에게 명령할 권한도 없었고 해당 거래로 얻은 이익도 없다"고 주장한다.

형 선고 직후 나발니는 체포됐다 며칠 뒤 풀려났고, 9월 8일로 예정된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할 권리까지 보장받았다. 정치 관측통들은 임시 모스크바 시장인 세르게이 소뱌닌이 주선한 일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야권의 인기는 별로 높지 않다. 여러 조사기관은 나발니가 형을 선고받은 날 열린 대규모 반정부 집회 참석자를 1만5000~4만 명으로 추산한다. 그것도 대도시 위주로 모였다. 볼로트나야 광장의 '5월 6일 시위' 1주년 집회에는 1만5000여 명이 모였다. 유권자 권익 보호 연합 '골로스'(목소리)의 릴리야 시바노바 대표는 "시위 동력이 1년 전 같지 않다"며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도 없고, 단지 집회에 얼굴을 내비치기 위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나발니 지지도는 5%다. 역시 후보인 소뱌닌 현 시장에 대한 지지는 53%다. 정치학자 드미트리 오레시킨은 "야권은 일부 엘리트의 지지를 받아야만 정권에 진출할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엘리트는 푸틴 주위에 결집하고 여기서 밀려난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나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 같은 인사들은 외톨이로 전락했다.

야권의 영향력은 인터넷, 특히 live journal.com이나 facebook.com 러시아 판에서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엔 표현의 자유가 아직 남아 있다. 러시아 언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푸틴의 캐리커처도 있다. 그러나 야권 인사에 대한 지지는 대부분 이들의 블로그를 읽는 데 그치곤 한다. 정치전략가 마리나 리트비노비치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호모 아만스'(감성적 인간)라고 한다. '좋아요'를 누르고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야권 지지자들은 대부분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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