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알렉산드르 민 가족)
알렉산드르 민은 1915년 12월 연해주 철산동(철산동은 1930년대 연해주 한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이후 철거되어 현존하지 않는다)의 한인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2년 그는 시코토보 중학교에서 10학년 과정을 마치고 극동국립대학교 예비학부에서 수학했다. 이후 푸탸틴 섬에 있는 학교에서 러시아어 교사로 일하다 1937년에 가족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됐다.
1941년 5월 알렉산드르 민은 붉은군대에 소집됐다.
1943년 7월 5일 쿠르스크 전투 당시 제1보병대대 중위였던 알렉산드르 민은 원형 방어선을 구축하고 네 번의 독일군 공격 격퇴에 직접 뛰어들어 독일군 일곱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제605보병연대 지휘관 폴로미예프 소령이 평가한 바로는 알렉산드르 민은 “남다른 용맹심을 발휘했다… 포위망이 뚫리자 민 중위는 전투 대열에 즉각 뛰어들며 타의 모범이 되어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었다.” 이 일로 민 중위는 1943년 7월 25일 붉은별 훈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분대 간 협동작전을 펼친 공로로 무공훈장을 여러 차례 받았다.
1944년 1월 알렉산드르 민은 대위로 진급하여 벨라루스 제1전선 제65군 132보병사단 605연대 예하 대대 지휘관으로 임명되는 동시에 소련 공산당 볼셰비키 당원이 되었다. 그는 볼린스크 주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 해방 전투에서도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44년 7월 4~5일 코벨 시 수복 전투에서 민 대위가 이끄는 대대는 적의 역습을 다섯 차례 격퇴했고 달아나는 적군을 추격하여 스타리예 카시리 마을도 탈환했다.
그러나 1944년 7월 9일 전투에서 민 대위는 파리두비 마을에 구축된 강력한 적 방어선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전사했다.
1945년 3월 24일 자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 명령에 따라 “독일 파시스트 침략자들과의 투쟁전선에서 사령부의 전투 임무를 모범적으로 수행하며 용기와 영웅심을 발휘한 공로”로 소련 영웅 칭호가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민 대위에게 사후 수여되었다.
알렉산드르 민은 대조국전쟁 시기에 소련 영웅 칭호를 받은 유일한 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