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리아노보스티)
1940년대 후반 패전 후 본국으로 탈출하는 일본인들을 실은 마지막 배들이 사할린 남부 해안을 떠나자 이곳에는 20세기 초 지정학이 낳은 '인간의 문제' 하나가 대두됐다. 일본에도 소련에도 속하지 않는 상당수의 한인이 남(南)사할린(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지배)에 고립된 것이다. 이들은 일본에 의해 남사할린, 혹은 일본식으로 '가라후토'라 불린 이곳으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이었다. 퇴각하는 일본인들은 이들을 자국민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해방된 조국은 정국 혼란에 빠져 이들의 존재를 잊고 말았다.
2013년 현재로 돌아와 보면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사할린에서 한인 공동체는 소수 민족의 모범으로 자리잡았다. 4만 여 명의 똘똘 뭉친 한인 공동체는 그 구성원 대부분이 러시아 시민권자로서 사할린의 문화와 사회에 완전히 융화돼 있다. 사할린의 우체국, 기업, 관공서에서만 아니라 세관과 이민국 사무소 등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일하는 한인과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 음식 역시 풍성한 해산물로 유명한 사할린 요리의 풍미를 더해준다. 대부분의 상점에서 러시아식 전통 샐러드와 함께 매운 한국식 샐러드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이제 김치와 고추가 들어간 매운 샐러드는 한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 모두가 찾는 음식이 됐다. 사할린 섬의 행정 중심지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는 한국 음식점이 상당히 많다. 물론, 서울에서 온 한국사람들은 이곳 요리를 보고 '진짜' 한국 음식과는 전혀 다르다고 손을 내젓지만 말이다.
이곳 한인 청년들의 모국어는 러시아어다. 그중에는 한국어를 몇 마디 할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국제 공용어가 된 영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다. 유즈노사할린스크에는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지정된 학교가 많지만 한국어를 실제로 말할 기회가 없는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한국어를 잊어버린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사진제공=로리/레기언메디아) |
확대지도로 본 사할린의 모습 |
유즈노사할린스크 소재 사할린국립대학교에서 5년간 수학하고 고향 부산으로 돌아간 토미 류 씨는 "사할린 한인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찾으라면 혈통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사할린 한인들은 이제 주식이 한국 음식도 아니고 의식 구조도 완전히 러시아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쁘다는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인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는 올레크 김(45세) 씨는 자신이 소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동료들도 그를 "유전적 한국인이라기 보다는 공통의 정체성을 가진 동료"로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그 또한 다른 사할린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상징적인 의미에 그치는 단축 군복무를 마쳤다.
여느 사할린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옥사나 이(28세) 씨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산 적도 있다. 옥사나가 결국 정착한 곳은 다민족으로 이뤄진 섬,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사할린이었다. "서울에 가면 나는 러시아 사람, 모스크바에 가면 한국 사람이 됐어요." 그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러시아가 일본에 진 후 모스크바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심한 욕설을 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사할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근면성실함으로 널리 알려진 한인들은 남사할린의 무역과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사할린 섬 최초의 5성급 호텔을 비롯하여 섬의 내로라 하는 기업들 상당수가 한인 소유인 이유에 대해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사업가 세르게이 다닐로프 씨는 "한인들은 디아스포라를 형성해 상부상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밖에도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서 사할린을 찾아 온 '동향인'들의 재정 지원도 무시할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할린에 석유가스 개발 붐이 일기 직전에 이곳을 떠난 올레크 김은 다닐로프와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사할린에서는 지금 아제르바이잔과 타지키스탄 인들도 상당히 큰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왜 한인만큼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김 씨는 사할린 사람들의 관용과 수용의 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동시에 일부 러시아인들이 한인들에게 느끼는 시기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할린 한인들은 어려울 때 잘 뭉칩니다"라고 김 씨는 말한다. 그는 2002년 봄 스스로 네오나치 단체를 대표한다고 주장한 '이반'이라는 자가 모스크바 주재 외국 공관 몇 곳(스웨덴, 인도, 일본 등)에 협박장을 보낸 사건을 떠올렸다. 협박 이메일은 허위로 판명됐지만, 당시 전국은 공포에 떨었다. 러시아 본토의 스킨헤드들이 페리 호를 타고 사할린 섬으로 건너와 한인들을 공격하려 한다는 소문이 한인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다. "실제로 사할린 폭력배들이 홀름스크 항에 도착한 스킨헤드 한 무리를 잡아 흠씬 패주고 본토로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고 김 씨는 회상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취재 중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사할린 경찰서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사건이 정말로 있었는지 확인해주지 않았다. 십중팔구 이 이야기는 사할린 한인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도시의 영웅담이 돼 버린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