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서 피란 온 러시아 여성들이 전하는 내전 참상

시리아엔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이 10만 명 정도나 된다. 대개 시리아인 남편을 따라 온 러시아 여성이다. 사진은 내전 때문에 모스크바로 귀국한 나데즈다(왼쪽)와 딸. (사진제공=엘레나 포초토바)

시리아엔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이 10만 명 정도나 된다. 대개 시리아인 남편을 따라 온 러시아 여성이다. 사진은 내전 때문에 모스크바로 귀국한 나데즈다(왼쪽)와 딸. (사진제공=엘레나 포초토바)

이웃이나 친척들은 호의적,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불안

시리아 거주 러시아 여성들의 운명에 전쟁의 직격탄이 날아들었다. 시리아의 북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는 전쟁의 와중에도 가장 평화로운 곳이지만 '전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시리아인과 결혼해 북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에 살다 러시아로 온 여성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뭔가'를 두려워해 자세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두 딸의 어머니인 나데즈다의 삶은 전쟁으로 뒤죽박죽이 됐다. 그녀는 "전쟁 전 거기 사는 러시아 여자들은 아주 많았어요. 대부분 가정주부인데 할 일도 별로 없어 아침 일찍 바다로 수영하러 갔죠. 하도 러시아 여성들과 아이들이 많이 와서 그 바다는 '러시아만'으로 불렸어요. 바다에 안 가면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거나..."라고 말했다. 그렇게 바다에서 두세 시간 놀다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7~8시면 누군가의 집에서 모여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시리아 사회는 러시아 여성들과 그 자녀들에게 개방적이었다. 어떤 러시아 여성은 이웃집 아랍 여성과 카드 놀이를 했고, 또 어떤 이는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인형극을 만들어 유치원과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찾아 자선공연을 하기도 했다.

전쟁은 이 모든 것을 바꿨다. 나데즈다는 바다에 갈 엄두를 못 냈다. 그녀는 "매일 뉴스 요약으로 시작해서 뉴스 요약으로 끝나는 삶을 살아요. 지금 문제는 생활이 아니라 생존이에요. 합법적 정권이 무너지면 가까운 장래에 나도 내 가족도 시리아 국민에게도 미래는 없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라타키아에서 살다 러시아에 돌아온 지 1년이 되는 라리사의 기억도 비슷하다. 두 자녀의 엄마인 그녀는 "전에는 늦은 밤까지, 심지어 심야에 거리에서 산책해도 무섭지 않았어요. 초저녁 어스름에 산보하는 여성도 많았고 저녁 운동을 위해 헬스클럽을 다녀오곤 하는 여자들도 많았고요"라고 했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자 밤에는 물론 낮에도 외출하기가 겁났다. 그녀는 "이제 혼자서는 거리를 다니지 못해요...적어도 수니파가 사는 지역들에서는 말이죠."

러시아 여성들은 시리아 사람들이 활달하고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구의 3분의 1은 젊은 층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2~3년 전만 해도 거리의 기념품이나 옷 가게 같은 곳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렀고 가게 앞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웃으며 춤을 췄다.

이제 거리엔 더 이상 그런 음악이 없다. 대신 구급차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만 더 크게 들린다. 모든 도로엔 구급차 전용 노선이 등장했다. 역시 라타키아에 살다 러시아로 온 니나 세르게예바 '러시아 동포 조정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시리아인과 결혼한 러시아 여성들은 시리아 어디서 살든 지난 2년이 큰 시련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일상 생활이 무너진 가운데서도 자신과 소중한 주변 사람들을 염려했고 제2의 조국인 시리아의 운명도 걱정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인과 결혼해 사는 러시아 여성들은 전쟁이 나도 자신들을 대하는 시리아인들의 태도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리사는 "친척들의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우리 관계는 언제나 대체로 아주 좋았어요. 시리아를 떠날 때조차도 모두들 이해해줬지요. 이웃들과의 사이도 그대로였고요. 내가 운동하러 다니던 스포츠 클럽 주인은 시리아 제재 결의안이 나오는 족족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줬다며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어요. 또 내가 러시아어를 가르쳤던 문화센터에서는 오히려 깨끗하게 잘 대해줬어요"라고 말했다.

라리사는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들이 달라서 일부 지인과는 정치 얘기를 안 했어요. 현 정권이 무너지면 우리 가족은 모든 게 진정될 때까지 당분간이라도 시리아를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남편과 장성한 아이들이 시리아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곳을 떠날 기회가 또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답니다"라고 말한다.

옐레나는 "택시를 타면 요금을 안 받고 식품점에 가면 물건을 선물로 주기도 했어요. 시리아인들은 자신들의 불행에 대해 러시아와 특히 러시아 여성들을 비난하지 않았어요. 전쟁 뒤 시리아 사람들의 태도는 내게 오히려 좋은 쪽으로 바뀌었어요. 내게 '러시아가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물건도 공짜로 주려 했고. 시리아 사람들은 정에 약한 민족이잖아요...."

그녀는 또 "러시아가 거부권을 처음 행사했던 때 수니파 지역의 한 상점에 갔더니 젊은 점원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어요. '러시아에서 왔다'고 했더니 '하긴...당신이 뭔 죄가 있겠어요'라고 말했어요. 사람들과 사태를 얘기하는데 가끔 언성들이 높아져요. 긴장과 두려움, 고통, 불확실성이 계속되지만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지요"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걱정한다. 계속 떠나 있어야 할까. 돌아가야 할까. 옐레나는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그저 여자이고 무엇보다도 엄마예요. 가끔은 무서운 기분이 들어요. 막내아들이 다섯 살인데, 정권이 바뀌면 아들의 미래는 없을지도 몰라요.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게 뻔해서 그래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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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거주 러시아인은 ...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1년 시리아에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10만 명 가까이 됐다. 주로 1950~90년대 남편을 따라 건너온 여성이다. 이들의 남편은 냉전 당시 소련의 대학에서 다양한 전문 교육을 받았다. 그 시기 '시리아인과 결혼한 러시아 여성들'은 아랍어 교육 수준이 높아 아랍어를 남편보다도 잘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시리아 방언도 자유롭게 구사했다. 당시 시리아에는 '러시아 붐'이 일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그런 여성은 민족적으로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중앙아시아 출신도 있었다. 당시에는 소련의 많은 전문가가 시리아를 지원했다. 소련이 북한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시리아에는 러시아 문화센터들과 러시아 외무부의 동포 지원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그보다 더 많은 나라는 이스라엘뿐이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과 러시아 이민자 약 100만 명이 있다.

시리아 거주 러시아인들 가운데 특수 계층으로 북캅카스 출신이 있다. 이들은 18~19세기에 이주를 시작했다. 무인 기질이 강한 이들이어서 시리아군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이가 많다. 그렇게 북캅카스 출신은 시리아 사회에 융화됐다. 시리아에는 많은 캅카스 사회 조직이 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러시아 영사관 자료에 따르면 시리아의 러시아 시민은 7000명이다. 그러나 현대 아랍 국가들의 사회정치 과정 전문가인 아랍학자 블라디미르 아흐메도프에 따르면 실제 수는 7000명이 넘는다. 등록하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아흐메도프는 "다마스쿠스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대한 한 차례 총격을 제외하고 러시아에 대한 '박해'는 없다"며 "분쟁이 해결되면 바로 시리아 내 러시아인들을 통해 긍정적 태도를 복원해야 한다"며 "이들은 우리 외교의 민간 대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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