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식으면…?’... 러시아 이혼세태 탐구

(사진제공=Photo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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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들은 가정이 파괴되는 세 가지 주요인으로 부부 중 어느 한쪽의 알코올 중독, 경제적 어려움, 옹색한 주택 사정을 들고 있다. 게다가 이 세가지는 대부분 동시에 나타난다. 정부는 이혼 시 부과되는 세금을 400루블(약 1만3천원)에서 3만 루블(약 1백만 원)로 인상하여 이혼 건수를 억제키로 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갈라서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것 같지는 않다.

발레리 레페힌은 직장에서 해고됐다. 발레라는 신임 상사가 자꾸 트집을 잡자 참다 못해 그의 한쪽 눈에 주먹을 날리고 영웅이 된 듯 우쭐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낳은 결과는 얼마 후에 찾아왔다. 레페힌은 세 달간 새 직장을 찾아다녔지만, 잠재 고용주들은 추천서를 요구하면서 그의 이전 직장으로 전화해 그에 관해 물어보곤 했다. 전 직장 상사는 레페힌의 부적격성에 관해 꾸며내 말하며 앙갚음했다. 아내는 발레리를 설득해 상사에게 찾아가 사과하라고 했다.

"둘째 딸이 생후 6개월도 지나지 않았어요. 우리 가족은 돈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내가 일을 하지도 못해요. 산후휴가 중이라서요." 이리나 레페히나가 푸념했다. "남편은 고집을 꺽지 않았어요. 그래서 주택 융자금을 매달 내야 하는 아파트를 세놓고 친정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니나 아르카디예브나(이리나 레페히나의 어머니)는 발레리가 항상 못마땅했다. 그녀는 자기 딸이 남편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고 전부터 확신했는데, 이제 그 이유가 훨씬 더 확실해졌다. 이제 딸네 가족을 포함한 온 가족이 그녀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상황이 됐다. 발레리는 상황이 복잡해지자 집에 가는 게 달갑지 않았다. 이리나는 남편이 상사와 화해할 때까지는 그와 말을 하지 않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이리나의 선언은 파국으로 이어졌다.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한 레페힌은 술을 잔뜩 마시고는 말문을 닫은 아내를 잡고 시비를 가리기로 했다. 이리나의 비명이 들리자 온 가족이 달려왔다. 니나 아르카디예브나는 레페힌을 아파트에서 쫓아내고 딸을 다그쳐 이혼 신청을 하게 했다.

알렉산드르 시넬니코프 모스크바대학교 사회학부 가정사회학과 교수는 가족관계에 금이 가는 중요한 이유가 러시아인 대부분이 직면하고 있는 옹색한 주택 사정에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부부가 이혼한 후에도 같은 아파트에서, 심지어는 한 방에서 사는 일이 꽤 자주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부부가 주택과 부동산, 자동차를 분할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혼을 자제하기도 한다.

작년 이혼은 65만 쌍, 결혼은 120만 쌍으로, 러시아는 이혼율 세계 선두로 평가되고 있다.

세 쌍 중 한 쌍이 결혼 3년을 못 넘기고 파경을 맞이하며, 35세 이하 부부 사이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다. 이혼율이 두 번째로 치솟는 시기는 결혼 25~30년 차, 50대로 접어드는 때로 나타났다. 아이들도 다 크고 더 이상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줄 이유가 없어지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다 크면, 부부가 함께 활동할 목표가 없어집니다. 둘이서 할 수 있는 인생의 큰 일을 치른 것과 같습니다. 목표는 달성했지만, 함꼐 할 새로운 의미는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물론 '인생의 반쪽'과 함꼐 하는 생활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덕분에 모든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가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집들이 많습니다." 키릴 흐로모프 '교차로' 심리센터 소장의 설명이다.

한편, 로스토프 의대는 결혼 10년 차 이상 부부 1만1천 쌍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다면 현재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수는 백 명에 불과했다.

"이런 통계 결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사람들의 이혼에는 문제가 많다. 이혼한 부부 70%가 서로를 원수처럼 생각한다"고 가정심리학자 키릴 흐로모프가 말했다. 결과적으로 여자들은 경제력도 없는 상황에서 홀로 가족의 부양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개 이혼 후 아이들을 맡은 것은 여자쪽이다.

"이혼 후 아이들 양육을 돕기는 커녕 양육비도 보내지 않고 자취를 감추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이혼 후에 남자들은 전부인과의 관계를 일부 혹은 완전히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고, 아이들에게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왔습니다." 크리스토페르 스보데르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교 부교수의 설명이다.

대개 이혼 후에 남자들은 생활이 안정돼 있는 자기 부모 집에 얹혀살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편인 어머니에게 특히 의지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또 다른 여자, 이번엔 자기 집이 이미 있는 여자를 찾아 재혼을 한다. 남자들은 안정감과 권력은 이런 식으로 복구한다. 어떤 이혼에서든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부모가 이혼하고 나면 아이들은 보통 엄마와 함께 산다. 리서치센터 '브치옴' 조사 결과를 보면, 이혼 후 5년 미만일 때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아버지는 44.1%였다. 5년이 넘어가면 수치는 낮아지기 시작한다. 이혼한 지 5~9년이 지난 아버지들 중에서 아이들을 자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31.9%에 불과하다. 10년 이상 지난 아버지 중에서는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이 24,5%에 그쳤다.

"가정법에 따르면 아버지는 동등한 자녀 양육권을 갖습니다. 법원이 자녀를 어머니와 함께 살게 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르촘 자이멘체프 가정법 전문 변호사가 말했다.

결혼생활의 파괴로 힘든 시기를 겪을 수도 있지만 이혼은 비극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라고 심리학자들은 단언한다. 붕괴되는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배우자, 자녀는 물론이고 이혼 후 찾게 될 새로운 인생의 반쪽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뻇는 행위라는 말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행복하게' 보다는 '짧고 신나고 멋지게' 살기를 원하는 부부들이 이런 식의 사고에 익숙한 듯 싶은 것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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