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러시아에서는 나라 안의 시간대 간격 수정의 필요성과 일광절약시간제 적용을 둘러싼 논쟁이 식지 않고 있다. 어떤 안이든 지지자와 반대자가 있게 마련인 탓이다. 광대한 러시아 영토에 현재 9개의 시간대가 있다. 그런데 이 시간대들이 일정하게 구획된 것이 아니라 어떤 지역의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매번 안내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현재 러시아 영토 상에는 10개가 넘는 시간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 9개의 시간대만 사용하고 있다. 시간대 경계는 러시아 연방주체들의 행정적 경계선과 맞아 떨어진다. 예외적으로 야쿠티야와 사할린 주, 이 두 연방주체의 경우에는 두 개의 시간대를 갖고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는 각 지방마다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측정한 태양시를 사용했다. 그 뒤 철도망이 발전하면서 모든 기차역에 페테르부르크 시간이 통일 적용됐다.
러시아에 '시간대(часовые пояса)'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소비에트 체제였던 1919년이었다. 이때 24시간제(행정편의를 위해 오후 9시를 21시로 표현하는 것)도 법으로 도입되었다. 레닌이 서명한 법령에 따라 소련 영토는 UTC+2부터 UTC+12까지 11개 시간대로 나뉘었다.
시간대 경계는 이론적 경계인 자오선(경도선, 지도상에서 직선) 또는 오비, 이르티시, 레나 같은 큰 강줄기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당시에는 인구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시간대 분할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 중부 지대에서는 시간대를 현(縣)의 경계를 따라 그었지만, 자오선과 크게 오차가 생기지는 않았다.
시간대가 가장 크게 바뀐 시기는 1980년대이다. 소비에트연방의 중심인 모스크바와의 행정적 공조 편의를 위해서 일부 지역이 한 시간, 심지어 두 시간까지 모스크바 표준시에 가깝게 시간을 조정하는 일이 이때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거주 인구는 극히 적은 반면, 석유, 석탄, 천연가스 채굴이 활발하여 모스크바 관리들과의 연락이 빈번하던 북부 지역에서 시작됐다.
그 뒤를 이어 블라디미르 주와 랴잔 주 등 모스크바와 인접한 주들이 연방의 수도와 가까워지려는 의도로 모스크바 표준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간대를 가장 많이 건너뛴 지역은 원래 UTC+6(모스크바보다 세 시간 빠름)에 위치하면서도 모스크바 시간대로 변경한 타타르스탄 공화국이다. 우드무르티야 자치공화국과 사마르 주는 마지막으로 표준시간대 수정 대열에 동참한 지역으로 2010년 3월부터 모스크바 표준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러시아의 유럽 지역에서 우랄로 넘어갈 때는 갑자기 시간이 2시간 빨라지는 이변을 낳았다.
몇 개의 시간대를 가진 여러 나라 중에서도 이처럼 갑자기 시차가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 러시아 의회에서 전국에 시간대를 4개로 통일하자는 안이 상정됐으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러시아에 일광절약시간제(일명 '서머타임')가 도입된 것은 임시정부 시절인 1917년 7월이었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매년 윈터타임에서 서머타임으로 전환했다가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1930년 윈터타임으로 전환하지 않고 전국에서 표준시간대보다 한 시간 빠른 시간이 적용되었다. 인민위원평의회(Совнарком)의 법령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어서 이 시간제를 법령시(декретное время)라고 했다. 사람들은 법령시에 익숙해져서 반세기 후인 1981년 다시 서머타임-윈터타임 전환제가 도입되자 표준시간대가 아닌 법령시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인들은 겨울에는 표준시간대보다 한 시간, 여름에는 두 시간 앞서 살게 된 것이다. 이 시간제는 10년동안 유지됐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법령시가 폐지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러시아법으로 재도입되었다. 폐지 당시에는 여러 지방 정부의 요청이 이유가 됐지만, 재도입 때는 주민들의 불만과 전력 낭비가 그 이유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러시아는 2011년 7월 1일부터 서머타임 체제로 고정됐다. 최근에는 국가두마(하원)가 전국에 시간을 윈터타임으로 전환한 후 유지시키는 안을 심의하기도 했다.
어떤 제도가 더 좋은 지는 객관적으로 답하기 힘들다. 시간제를 바꿀 때마다 찬성하는 사람만큼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지리학자 안드레이 파닌은 인간이 깨어있는 시간과 하루의 일광시간이라는 두 가지 범주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시간제의 실익을 따질 때 전기 절약을 고려하는 적이 없다. 전문가들도 국민의 편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시간제를 바꿔 저녁 시간에 밖이 환하면 교통사고율이 낮아질 수 있지만, 바뀐 시간제에 신체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두 주 힘들 수 있다는 식이다. 서머타임으로 고정한 이후 겨울마다 아침에 어두워서 일어나기 힘들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상당히 높다. 전자기기와 관련된 문제도 있다. 실제로 이제는 필요 없는데도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자동으로 시간제를 바꾸는 상황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