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이타르타스)
러시아에서 담장은 오래 전부터 외부의 위협을 막아 주는 기능만 아니라 국민을 통제하는 기능도 수행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 담장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담장에 항상 구멍이 나 있는 것. 담장이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지켜주기보다는 심리적으로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주택의 창문 장식에는 전통적으로 두세 겹의 커튼과 레이스가 사용되고 창문은 심지어 3층까지 창살로 덮이곤 한다. 완벽한 담장의 개념은 폐쇄 사회를 만들어 내며 안전 유지에 드는 거래 비용을 높이고 있다. 경비원과 감시원들은 의례 준수를 위해 생산 노동에서 열외가 된 사람들이다.
그 결과 모스크바에는 건물 창문 창살에서 지하철의 육중한 출입문과 짙게 선팅한 자동차 창문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장벽'이 세워져 있다.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는 출구의 문이 세 개 있지만, 언제나 하나만 개방된다. 게다가 이것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대령이 아니라 음악원의 일개 청소부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이 문으로 '스며 들듯 들어 가야'만 한다.
러시아에 담장 현상이 생겨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러시아는 일부 집단의 사람들이 자원을 장악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나라다. 담장은 그들이 이 질서를 재생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둘째, 담장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 불신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불신은 소련 시절부터 쌓여 왔다. 키프로스나 스페인 어딘가에 가서 높은 담장을 보면 그 너머에 러시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러시아 경제학자 알렉산드르 아우잔은 자신의 저서 '초보를 위한 제도주의 경제학(Институциональная экономика для чайников)'에서 담장 높이에 따라 사회자본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고 쓰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영국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지었다고 자신에게 알려준 친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구는 자신의 4층짜리 집을 감옥이나 정신병원 등 위험 시설처럼 대리석 담장으로 에워쌌다고 한다.
셋째, 담장은 재산 문제와 관련돼 있다. 러시아에서는 사유재산 보장이 미약하다. 사업가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사업에 구미를 느낀다면 그가 언제라도 이 사업을 '가로채 갈지' 모른다고 두려워 한다. 러시아에서 유일한 재산 소유자는 국가다. 나머지 사람들은 단순히 국가를 대리한 임시 경영자일뿐이다. 소련 시절의 심리가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산 소유는 언제나 잠정적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담장의 과대망상을 낳았다.
끝으로 담장은 끝없는 러시아 공간에 한계를 설정하고 형태를 부여하려는 모종의 시도이기도 했다. 담장은 모든 종류의 유출입과 원거리 이동을 제한하는 데 필요했다.
전문가들은 요즘 사람들이 경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경계를 지우고 싶어 한다고 지적한다. 푸틴 대통령의 정책과 크림 역사와 관련하여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새로운 담장의 출현에 다름 아니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선을 새로 긋고 서방에 대해서도 새로운 장막을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러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도 거대한 담장이 똑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장들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이런 정신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시 환경을 더 개방적인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크렘린궁 내부를 좀 더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게 만든다든가 말이다.
기사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