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늦추는 러시아 젊은이들

(사진제공=알렉세이 쿠덴코/리아 노보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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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람들이 혼인신고를 나중으로 미루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24세 미만 젊은이의 결혼 건수가 전체 결혼 건수 가운데 40%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그 절반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먼저 직장을 얻고 인생경험을 쌓은 후에야 결혼이라는 관문에 들어서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고리 야시코프와 예브게니야 야시코바는 대학생 때 만났지만, 결혼은 대학 졸업 때까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예브게니야는 재정 문제가 결혼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강의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돈이 언제나 모자랐다"고 설명했다. 이고리는 일단 동거를 해본 후 청혼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대학에 다닐 때는 인생이 기대하는 대로 흘러갈지 확실치 않다. 결혼을 먼저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서로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예브게니야는 이런 남편 생각을 거들며 "결혼 직후는 상대방과 매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그런 마법과도 같은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겐 그럴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떠날 계획이었지만, 이번에도 재정 문제로 결혼을 대학 졸업 이후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재학 중에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인들 가운데 대학 재학 중에 결혼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결혼은 우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고리가 결론지어 말했다.

법적혼 대신에 사실혼이 대세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18~24세에 결혼하는 남성의 수는 1980년에서 현재까지 세 배로 줄었다. 1980년 남성의 혼인신고 수는 90만 명 남짓이었으나 2013년에는 30만 명을 조금 웃돌았다. 여성도 비슷한 상황이다. 1980년 여성의 혼인신고 수는 백만 명 이상이었으나 2013년에는 4만6천 명 남짓이었다.

심리학자 나탈리야 트로피모바는 대학생 결혼 건수 감소가 사회 변화를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사실혼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바뀌면서 지금은 사실혼이 충분히 허용할 만한 규범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혼인신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탈리야 트로피모바는 보통 사랑과 출산, 안정, 사회적 지위,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결혼의 동기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요즘 대학생들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도 그냥 만나거나 동거하며 살면서 이 모든 걸 거의 다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커리어 비중도 커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다수 젊은이가 결혼의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인 출산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탈리야 트로피모바의 견해에 따르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자유를 만끽하고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가정 심리학자인 마리야 로만초바는 이런 추세에서는 대학 졸업과 커리어 쌓기를 부추기는 사회·경제적, 사회·심리적 요인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사회 생활을 시작할 정상적인 기회가 가로막힌다. 교육을 받는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결혼 연령도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리아나 샤키로바는 "나와 미래의 남편은 대학생 때 만났지만, 결혼은 대학 졸업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고 Russia포커스에 말했다. 리아나는 석사과정을 외국에서 마칠 계획이었다. 그녀는 "결혼하고 일 년도 함께 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학업과 가정은 양립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마리야 로만초바는 가족과 자녀를 부양하는 것도 결혼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소련 시절 사람들은 부모에게 잠시 얹혀 살 용의가 있었지만, 요즘 세대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가려는 경향이 더 많다"고 말했다.

달라진 환경

"결혼과 출산이 인간 삶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소련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사실 결혼하고 나서도 모든 게 그대로였다. 심지어 아이를 낳아도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나 바르가 고등경제대학 '체계적 가정심리치료' 석사과정 주임교수의 말이다. 바르가 교수는 이런 경향이 가난한 나라들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도 부모의 삶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출산률 문제가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재산과 저축이 생기자 결혼에 대한 태도에서 책임감이 더 막중해졌다. 지금은 삶에 대한 전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바르가 교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싶고 살 수 있을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 이게 결혼관과 합치하지 않는 일이 자주 있다. 커리어를 쌓는 것도 가정과 자녀와 양립하지 않는 일정한 생활양식을 의미한다."

게다가 기대수명과 함께 유소년기도 늘어나고 있다. 나탈리야 트로피모바는 "요즘 대학생들은 서둘러 어른이 되려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어른이 됐는지'를 판가름하는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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