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예브게니 할데이/타스)
러시아인들은 현대사에 더 해박하고 20세기에 일어난 승리와 혁명들을 가장 잘 기억한다. 가장 많은 러시아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중요한 날은 소련이 1945년 5월 9일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거둔 승리의 날이다. 작년 12월 여론재단(ФОМ)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96%가 이 날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에서 이 날은 국경일이다. 해마다 이 날이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군사행진이 펼쳐지고 전몰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이 이어지며 예포를 발사한다.
"소련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 날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말에 따르면, '소련 인민의 삶에서 '영광의 순간'이 되었다. 이는 소련 역사상 사람들이 조국의 승리와 자유를 위해 감당한 상실의 의미가 명약관화했던 유일한 시기다." 역사학자이자 라디오 방송 '베스티 FM'의 정치 평론가인 안드레이 스베텐코의 말이다.
이 날은 많은 러시아인에게 특별한 날이다. 전쟁의 상실을 겪지 않은 가족은 러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며,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도 아직까지 일부 살아 있다. 5월 9일이 조국 러시아에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인정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승전기념일을 기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러시아인 77%가 날짜를 기억하고 있는 1917년 10월 혁명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거의 1세기가 지난 오늘날 이 사건에 대한 현대인의 평가는 부정적이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혁명의 결과로 러시아에서 내전이 시작됐고, 황가가 총살되면서 군주제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러시아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세 번째로 큰 정치적 사건은 1991년 소련 체제의 붕괴였다. 러시아인 65%가 이 날을 기억하고 있다. "대다수 러시아인들에게 이 날은 아직 역사라고 할 수도 없다. 얼마전 그들이 직접 겪은 일이다. 사람들은 교과서에서 이 날의 일들을 읽은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건들의 목격자로 소련 붕괴의 모든 결과를 직접 겪었다." 심리학자 옐레나 갈리츠카야의 말이다.
인간이 우주를 비행한 날은 러시아인 64%가 기억하고 있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세계 최초로 우주를 정복했다. 우주인 가가린 자신도 전설이 되었다. 우주 비행 이후 가가린이라는 이름은 신생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 됐으며, 가가린이 사고로 사망한 이후에는 소련 역사상 최초로 국가수반이 아닌 인물을 기리는 전 국가적 차원의 애도일이 선포되었고 소련 전역에 가가린의 이름을 딴 거리와 광장들이 생겨났다.
러시아인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전쟁은 쿠투조프 장관이 지휘한 러시아군과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군 사이에서 벌어진 1812년 전쟁이다. 1812년 전쟁에서 가장 큰 전투였던 보로디노 전투 날짜는 러시아인 51%가 기억하고 있다. 이 전투는 19세기에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투 가운데 하나로 이 날 하루에만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흥미로운 점은 양군 지휘관이 보로디노 전투를 각자의 승리 목록에 올려놨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러시아인들이 도덕적 승리를 거뒀고, 이게 결국 1812년 전쟁의 최종 승리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로디노 전투는 민중이 처음으로 차리의 명령을 받지 않고 조국 수호에 나선 사례다. 평범한 민중만 아니라 러시아 귀족들도 민병대로 출전했다. 러시아적 정신, 명예와 조국에 대한 러시아적 관념이 바로 이렇게 발현되었다." 스베텐코의 말이다.
러시아 역사는 무엇보다도 전쟁과 승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열 개의 가장 중요한 사건 속에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라는 구체적인 인물과 관련된 날짜도 들어 있다. 러시아인 37%는 이 날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아이콘이다. 러시아인 모두가 아주 잘 아는 유일한 작가다." 교사 소피야 체르나추크의 말이다.
2013년 프치옴(ВЦИОМ,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인 59%가 역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에서는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것, 특히 역사상 실수들을 배우는 것이 개인에게나 국가 전체에도 언제나 성공의 관건으로 간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