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까지 러시아에는 교복이라 할 만한 옷이 존재하지 않았다. 교복의 출현은 알렉산드르 1세와 연관되어 있다. 알렉산드르 1세의 명령으로 1811년 10월 19일 유명한 차르스코예셀로 귀족기숙학교가 성대하게 문을 연 것이다. 10~14세의 소년들로 이루어진 초창기 학생들의 교복은 군복과 비슷했다. 남색 재킷에는 은사로 수를 놓은 붉은 옷깃이 달려 있었고, 흰 가죽바지에 긴 부츠를 신었다.
1834년 니콜라이 1세는 김나지움 학생들부터 고위급 관료에 이르기까지 공직과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제복을 입히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나지움 학생들은 군복과 비슷한 교복을 입게 되었다. 금색 장식끈이 둘린 옷깃을 세운 프록코트에는 금장 단추가 달려 있었으며, 허리에는 금속버클이 달린 벨트를 둘렀다.
학생들은 군복과 똑같은 은색 단추가 달린 더블버튼 코트를 입기도 했다. 1862년부터는 광택이 나는 챙이 달린 제모에 낙타 털로 만든 후드를 덧달았다. 이 후드는 목도리처럼 목에 맬 수 있어 보온성이 뛰어났다. 란도셀은 오랫동안 김나지움 학생들의 상징이었다.
(사진제공=표트르 코발료프/타스) |
1860년대에는 각 잡힌 제복 대신 '김나스초르카'란 이름의 제복셔츠가 등장했다. 김나스초르카는 가볍고 활동성이 좋은 셔츠 모양의 옷으로, 허리에는 버클 벨트를 맸다. 김나스초르카는 점차 교복뿐 아니라 군복의 상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1860년 키예프에서 최초의 여학교가 설립되면서 갈색 모직 원피스와 검은 에이프런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교복이 디자인되었다. 19세기 말에 와서야 여학생들은 옷깃과 소매에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와 하얀 에이프런으로 구성된 정복을 가지게 되었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교복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1922년 피오네르단이 조직됨에 따라 다시금 단원복이 등장했다. 단원복은 황가의 자녀들을 비롯해 19세기 말 누구나 다 입고 다니던 세일러복, 즉 짙은 색 바탕에 줄무늬가 들어간 칼라와 소매가 달린 흰 상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피오네르 단원들은 모두 이렇게 생긴 단원복을 입었지만, 목에는 줄무늬 칼라 대신 붉은 스카프를 맸다.
암울한 전시와 전후 시기를 지나면서 교복은 다시금 잊혀졌다. 교복이 다시 나타난 것은 1948~49년의 일이다. 남학생은 옷깃을 눕힌 군복형 김나스초르카를 입었고, 여학생은 갈색 모직 원피스와 검은 에이프런을 입었다. 정복은 흰 에이프런과 옷깃과 소매에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였다. 이러한 교복은 니키타 흐루쇼프의 '해빙기'가 찾아올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62년 군복형 김나스초르카는 회색 플란넬 재킷으로 바뀌었다. 여학생의 교복은 그대로였다. 교복에 사용되는 천은 질이 좋지 못했다. 공장에서 쓰고 남은 섬유로 천을 만들어 썼기 때문에 교복은 금세 후줄근해졌다. 1973년부터 남학생들은 모 혼방 원단으로 만든 파란 교복을 입었다. 외투와 바지는 당시 유행하던 가슴에 주머니가 있고 어깨 장식이 달린 청재킷이며 청바지와 모양이 비슷했다. 소매에는 학교 마크를 달았다. 1983년부터 고등과정 남학생은 폴리에틸렌과 모를 혼방한 제법 좋은 재질의 파란 재킷을 입고, 여학생은 주머니가 달린 재킷과 조끼, A라인 스커트로 구성된 남색 스리피스를 입었다. 초등과정 여학생은 소매 없는 원피스 안에 흰 블라우스를 입었다. 1994년 봄부터 러시아에서는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다. 오늘날 교복의 착용 여부는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학생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