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쿨리즈니코프.
AP지난 11월 러시아 선수들은 세계 신기록 2개를 동시에 달성했다. 11월 20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파벨 쿨리즈니코프는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됐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에서 파벨은 500m를 33.98초에 주파했다. 이와 함께 파벨은 몇 주 전 캐나다 캘거리에서 수립한 자신의 기록도 갈아치웠다.
11월 29일에는 역도 선수 알렉세이 롭체프가 역사적 위업을 달성했다. 롭체프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역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품격 있는 종목인 용상 105kg 이상 최중량급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롭체프는 264kg을 들어올렸다.
러시아 선수들이 또 어떤 종목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는지 Russia포커스가 알아 봤다.
바실리 알렉세예프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현 세대 러시아 육상 선수들에게는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들이 본받고 싶은 가장 대표적인 예는 현역 시절에 세계신기록 80개를 수립한 1972년 뮌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바실리 알렉세예프다.
그가 역도에서 세운 세계 신기록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72년 에스토니아 탈린 대회에서 소련의 전설적인 역도 수퍼헤비급 선수 알렉세에프는 세 종목(인상, 용상, 추상) 합계 645kg을 들어올렸다. 이 위업을 깨는 건 불가능하다. 현재 역도 공식 대회에서 추상 종목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력이다. 경기대에 나서는 선수들의 상태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어떤 선수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구슬땀을 흘린다. 또 다른 선수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보면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정신력이 약하면 지고 만다. 그들은 항상 나와 바벨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바벨과만 싸워야 한다”(스포츠 포털 championat.com에 실린 알렉세예프의 말).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신기록은 오늘날 최고의 여자 선수 가운데 한 명인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수립했다. 유명한 장대높이뛰기 선수인 이신바예바는 200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5.06m를 뛰어넘었다. 세계 어느 누구도 이신바예바의 경이로운 업적에 범접조차 할 수 없다. 이 기록은 그녀의 27번째 신기록이었다.
예를 들면, 2012년 런던 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우승 기록은 이신바예바의 기록보다 30cm가 모자랐다. 당시 미국의 제니퍼 슈어는 4.75m라는 수줍은 점수로 우승을 차지했다. 런던에서 이신바예바 자신은 부진하여 동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2013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출산 때문에 공백기를 갖는다고 발표한 옐레나 자신도 6년 동안 자신의 신기록에 근접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녀가 세운 5.06m의 신기록은 신세대 선수들에게 오랫동안 기준점이 될 수도 있다.
유리 세디흐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지난 30년간 육상 선수들은 거의 모든 종목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다. 깨지지 않고 남아 있는 신기록은 몇 개뿐이다.
이 기록 가운데 하나는 소련 해머던지기 선수 유리 세디흐가 세웠다. 1976년 몬트리올과 1980년 모스크바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세디흐는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6.74m라는 엄청난 거리로 해머를 날려 보냈다. ‘아르구멘티 이 팍티(Аргументы и факты)’ 지는 1991년 프랑스로 이주한 세디흐가 “내 기록을 깰 수 있는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고 한 말을 인용해 전했다.
세디흐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대학교에서 16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는 지도자로서도 성공을 거뒀다. 그의 딸 알렉시야가 2010년 싱가포르 세계청소년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탈리야 리솝스카야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유리 세디흐 가족은 또 하나의 오래된 육상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투포환 선수인 그의 아내 나탈리야 리솝스카야가 1987년에 사상 유례 없는 22.63m를 던졌기 때문이다. 올림픽 챔피언 부부는 1991년 파리로 이주했다. “프랑스 육상 클럽이 상업 대회에서 자기 팀 선수로 출전해 달라고 나를 초대했다.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당시는 선수들과 코치들이 생존을 위해서 어떤 제의도 받아들이는 시대였다. 그때가 1991년이었다. 스포츠는 이미 말할 것도 없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했다. 우리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으로 가다가 맞은 편에서 탱크들이 줄지어 모스크바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유리 세디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