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러 남해 군사기지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휴양지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Shutterstock/Legion Media
흑해 연안 크림 반도, 그곳에서도 전쟁의 영광이 서린,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땅 세바스토폴… 이 도시는 일반적인 해안 도시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이곳에서도 카누타기나 돌고래와 함께 하는 수영, 해변에서의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고대그리스 시대부터 소련 시대에 이르는 엄청난 위용의 군사적 유산들이 만들어낸 모순적인 조화로움은 세바스토폴의 분위기를 매우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흑해로 돌출한 크림반도에 자리잡은 세바스토폴은 로마-비잔틴-오스만-러시아라는 네 제국의 지배를 겪었다. 지난 2014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심각한 영토분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당시 크림 반도와 함께 러시아연방에 귀속되면서 연방시의 자격을 획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행정구역 분류에 따르면, 세바스토폴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한 지방으로 특별시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바스토폴은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개방된 안전한 도시다. (참고로 세바스토폴로 오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외부에서 이곳으로 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모스크바에서 항공편으로 심페로폴로 와서 그곳에서 세바스토폴까지 70km를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모스크바에서 미리 현금으로 루블화를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크림 반도 주민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도입된 서방 제재 탓에 카드 사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행자들에게 호의적이지만 현지인 중에는 외국어를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잘 한다면 여행이 편해질 것이다.

인케르만 시의 요새와 동굴수도원, 크림산맥의 줄기와 자연보호구역들이 자리한 1천여km2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의 세바스토폴(모스크바에서 1,274km)은 그 영토의 1/4이 바다다. 그때문에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 깊고 도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은 바다와 관련된 명소들이다.

도시의 상징

러시아포커스 : 세바스토폴... 러 남해 군사기지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휴양지

'침몰함 추모비' (사진제공=Shutterstosk/Legion Media)

세바스토폴에서 가장 볼만한 바다 명소는 도시 중심부 해안도로에서 머지 않은 프리모르스키 가로수길(Приморский бульвар)에 위치한 ‘침몰함 추모비(Памятник затопленным кораблям)’다. 이 기념비는 육지와 해상에서 모두 관람이 가능하며 현지인과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크림전쟁 당시(1853~1856) 러시아제국 해군 사령부는 해안포병 지원을 위해 노후한 범선들을 뱃길을 가로질러 침몰시키도록 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코르닐로프 해군중장이 1854년 9월 11일 내린 명령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노력의 결과물을 희생시켜야 하다니 쓸쓸하다. 이 배들을 세상이 부러워할 만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러나 필요에 순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도시 방어를 위해 희생된 배들에 바치는 추모비는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1905년 ‘1차 세바스토폴 방어전’ 50주년 기념식에 맞춰 세워졌다.

이와 관련해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세 주교(Три Святителя)’라 불린 함선이 집중포화에도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제서야 선원들이 배안에 남겨둔 성상을 기억해냈고 배로 헤엄쳐 가 성상을 꺼내자 배는 저절로 바다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방어가 허술했던 세바스토폴 시는 화력에서 몇 배를 능가하는 적을 상대로 장장 11개월을 버텨냈다. 당시 도시 방어에 나선 병사들의 영웅적 활약에 대해서는 세바스토폴의 철옹성 같은 요새들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적국들(특히 영국)조차 신문에서 외경심을 담아 기사화할 정도였다. 1854~1885년 해를 넘긴 349일 동안의 방어전 승리로 세바스토폴과 방어전 참전자들은 전 세계에 용맹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심신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곳… 세바스토폴 돌고래 수족관

러시아포커스 : 세바스토폴... 러 남해 군사기지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휴양지

세바스토폴 돌고래 수족관 (사진제공=Lori/Legion Media)

여행자들 사이에서 다음으로 인기있고 중요한 바다 명소 또한 세바스토폴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침몰선 추모비에서 머지 않은 아르틸레리스카야 만(Артиллерийская бухта)에 있는 세바스토폴 돌고래 수족관(Севастопольский дельфинарий)이 그것이다. 개장 후 15년 사이 수족관 관내에는 흑해 돌고래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설 외에도 돌고래 번식 및 재활을 위한 특수시설이 들어섰다.

고지대로 올라가 아르틸레리스카야 만을 내려다보면 검푸른 바닷물을 배경으로 푸른 옥빛의 ‘섬’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돌고래 수족관의 아쿠아리움인데 해양동물 관리를 위한 특별한 국제기준에 맞춰 수질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곳에는 큰돌고래와 흰돌고래 외에 물개도 있다. 돌고래와 물개와 교감을 나눈 후 수족관 안에 있는 큰앵무새 전시관을 돌아볼 것을 추천한다. 마코앵무, 코카투앵무, 아프리카회색앵무와 기타 열대조류들이 바다동물들 옆에서 편안히 서식하면서 심지어 돌고래의 휘파람소리와 혀차는소리를 흉내내기도 한다. 시내에는 이곳말고도 카자치야 만(Казачья бухта)에 돌고래 수족관이 하나 더 있는데 돌고래를 군사용으로 훈련시키는 곳이다. 전 세계에 군용 돌고래 훈련센터는 두 곳뿐이다. 세바스토폴과 미국 산디에고에 있다.

‘발라클라바’ 지하 잠수함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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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클라바 만 (사진제공=Lori/Legion Media)

전설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 당시 영국군 병사들이 크림 반도의 도시 발라클라바 근처에서 추위로 심하게 떨다가 발라클라바라는 이름의 뜨개질 모자(눈과 입을 제외한 머리와 얼굴을 완전히 덮어 쓰는 털실로 뜬 방한모자로 주로 등산자와 스키어, 군인 등이 씀, 편집자 주)를 고안해냈다고 한다. 발라클라바는 터키어로 '물고기 자루' 또는 '낚시하기 좋은 날씨'를 의미한다. 이곳의 정착촌은 이미 AD 1세기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호머는 "오디세이"에서 이 정착촌을 라모스라고 부르며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이 그리스인 마을은 14세기에 제노바인들의 영향권 아래 놓이고, 그들은 이곳에 쳄발로 요새를 짓는다. 요새의 그림 같은 유적들은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도시는 그 후 1세기 만에 터키인들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로부터 3세기 후에는 자포로지예 카자크인들에게 점령됐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발라클라바는 러시아 제국의 인기 휴양지로 변했고, 유수포프와 골리친 공작은 이곳에 자신들의 영지를 세웠다. 소련 시절 발라클라바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으로는 이곳에 소련 최초의 다이빙 코스가 개설되었을 뿐 아니라 잠수함 수리와 보급용 지하공장도 건설됐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세바스토폴의 발라클라바 만(бухта Балаклава)에 그동안 극비로 유지돼온 잠수함 수리공장이 세계 최초로 일반에 공개됐다. 이 군사전략적 시설의 어마어마한 규모는 세계에서 그 비교상대를 찾기 힘들다. 만(灣)이라는 위치적 특성과 독특한 지형 덕분에 외부로부터 격리된 산 아래 이 지하기지는 핵공격도 견딜 수 있다. 발라클라바 기지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보다 강력한 핵폭탄의 직접 공격에도 끄덕없게 지어졌다. 외부 공급이 끊겨도 30일 동안 생활이 가능하다. 비밀갱도 안에는 통신시설, 연료·무기 저장고, 식량 창고가 있다.  전시에는 7기의 중(中)형 잠수함 또는 9기의 소형 잠수함 외에 최대 3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소련 정부는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자 핵폭발의 파괴 규모와 결과를 평가한 후 핵공격 시 장비와 인명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발라클라바에 건설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9년을 끈 발라클라바 기지 건설 기간 동안 건설노동자들은 쉬지않고 3교대로 일을 했다. 기지 설계도면은 필요한 부분만 제공되었고, 건설이 완공된 후 관련 문서들은 모두 압수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규모와 독창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발라클라바 지하기지도 전략적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는 소련 해군이 관리가 더 어렵고 규모가 더 큰 클래스의 잠수함들을 운용하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돼 있다. 그 결과 수리공장은 1993년까지 가동되다가 1995년에 마지막 잠수함이 기지를 떠났다. 해군 지하기지는 폐쇄됐고 좀도둑들의 소굴이 됐다.  그러다가 2002년 레오니드 쿠치마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발라클라바 해군종합박물관’을 조성하기로 결정했고, 2003년 박물관을 개장했다.

현재 배를 타고 기지의 지하터널을 탐방하는 관광코스가 운영 중이다. 보트를 타고 지하 잠수함 기지를 도는 데는 30~40분이 걸린다. 영어 가이드는 이메일(vmmu.sev@gmail.com 또는  vimfs@mail.ru)로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러시아포커스 : 세바스토폴... 러 남해 군사기지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휴양지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사진제공=이리나 아폰스카야/타스)

2천 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세바스토폴 서쪽 해안에 위치한 고대그리스 영웅들의 도시 케르소네소스(러시아어로는 ‘헤르소네스’)의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하자르 한국과 키예프 공국, 그리스, 터키 그리고 제노바 상인들의 군사정치적 이익이 충돌하던 무역의 중심지, 도시국가 케르소네소스는 15세기 최후를 맞기 전까지 많은 인구와 훌륭한 항구로 유명했다. 도시가 위치한 반도 지형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세워진 높은 성벽이 아직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석공들의 손을 거친 큰돌을 쌓아 만든 제논 방어탑,  연극 상연과 검투사 경기를 위한 3천 명 수용가능한 고대 극장, 7개 성당이 에워싸고 있는 도시의 중앙광장 ‘아고라’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988년 케르소네소스에서 세례를 받고 같은 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블라디미르 대공을 기리기 위해 19세기 중엽에 그의 이름을 딴 성당이 아고라 광장에 지어졌다.

현재 케르소네소스 역사고고학보호구역은 전 세계의 고고학자들과 전공 대학생들이 실습을 위해 찾는 거대한 연구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체계적인 발굴을 통해 케르소네소스의 역사를 재건할 수 있었고, 발굴 유물 중 가치가 높은 것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시 박물관과 모스크바의 국립역사박물관, 푸시킨조형예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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