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러시아 – 12: 러시아에선 왜 매년 승전기념일에 퍼레이드를 할까?

러시아에선 왜 매년 승전기념일에 퍼레이드를 할까?

러시아에선 왜 매년 승전기념일에 퍼레이드를 할까?

바르바라 그란코바
‘궁금한 러시아’는 러시아와 관련된 인기 검색어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기획기사 코너다. 지금까지 ‘보드카는 어떻게…’ “푸틴은 왜…?’ 같은 기사를 실었다. 오늘은 러시아에서 왜 매년 승전기념일에 군사퍼레이드를 하는지 소개한다.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는 사회학자들의 질문에 러시아인들은 20년 넘게 ‘1941~1945년 대조국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장 많이 꼽고 있다. 나치독일에 대한 승전기념일인 5월 9일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전국민적 축제의 하나인 것도 놀랍지 않다. 2016년 승전기념일 기념행사에는 전국적으로 2천 4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참여했다. 러시아 인구의 거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야간 불꽃놀이와 참전용사들에게 선물하는 카네이션과 함께 ‘승전기념일’ 하면 떠오르는 가장 친숙한 이미지는 바로 모스크바 군사퍼레이드다. 매년 붉은광장의 검은 돌로 포장된 광장 위로 수천 명의 병사들이 행진하고 최신 군사장비를 선보인다. 예로 2015년에는 최신형 ‘아르마타’ 전차가 공개됐다. 퍼레이드 사열은 국방장관이 직접 받는다(현 국방장관은 세르게이 쇼이구다). 전승 70주년이었던 2015년 퍼레이드를 치르는데 8억 1천만 루블(약 160억 5,420만 원)이 들었다. 비교로 2016년 들어간 비용은 2억 9천 5백만 루블(58억 4,690만 원)이었다.

러시아 군사퍼레이드는 그 규모에 있어서 독보적이다. 서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2차 대전 종전을 대규모 군사행사로 기념하지 않는다. 중국은 2015년에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일회성 행사였다. 수천 명이 참여하는 군사퍼레이드를 러시아에서는 매년 개최한다. 왜일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조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에서 승전기념 군사퍼레이드는 현대 러시아보다 훨씬 약소하게 치러졌다. 게다가 횟수도 훨씬 적었다. 1945년 6월 붉은광장에서 소련군 병사들이 레닌묘 위로 나치독일군의 군기를 쌓았던 첫 승전 퍼레이드가 있은 후 20년 동안 승전기념 퍼레이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역사학자인 데니스 바비첸코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과 그 사후 소련을 이끈 니키타 흐루쇼프는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들이 정치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때문에 군사령관들과 참전용사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일에 인색했다. 1965년까지 승전기념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지조차 않았다.

승전기념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 규모로 성대하게 기념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소련 지도자는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였다(1966~1982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하지만 그 재임기에도 퍼레이드는 특별한 해에만 치러졌다. 소련의 마지막 군사퍼레이드는 1990년에 치러졌고, 새로운 러시아 수립 초기 몇 년 동안은 퍼레이드는 아예 열리지 않았다. 다시 퍼레이드가 시작된 것은 1995년이며 현재와 같은 규모로 퍼레이드를 개최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퍼레이드를 통해 ‘국민화합’ 도모

역사학자인 드미트리 안드레예프는 본지와의 대화에서 현재의 러시아에 있어서 승전기념일은 러시아를 하나로 묶어주는, 실제 효과가 증명된 몇 안 되는 ‘접착제’ 중 하나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승전기념일과 그를 둘러싼 기억 공간은 국민적 화합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군사퍼레이드, 불꽃놀이, ‘불멸의 연대’ 행진… 이러한 의식들을 공동의 기억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국은 이러한 의식들을 국민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군사퍼레이드 개최 등 승전기념일을 최대한 성대하게 치르려는 러시아 당국의 노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현장에서 퍼레이드를 보는 게 불가능하다고 때로 불만을 늘어놓는다. 모스크바에 사는 블로거 일리야 바를라모프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니라 티비 화면을 위한 행사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발언대라도 만들어주면 어떤가?”라고 썼다. 그는 또한 당국이 ‘기억과 추모의 날’인 승전기념일을 ‘군사력 과시’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압도적 다수의 러시아인(레바나센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96%)이 퍼레이드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스크바에 사는 24세의 율리야 코발료바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매년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행진하는 거나 엄청난 무기들을 지켜보고, ‘우라(만세)!’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자긍심도 생기고 든든한 기분도 들었다. 멋진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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