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식 ‘황제의 사랑’...수 많은 연애사로 유명했던 세 명의 군주

예카테리나 2세

예카테리나 2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성(聖)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Russia포커스는 나라를 통치하는 능력뿐 아니라 다채로운 연애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러시아 황제와 여제를 돌아봤다.

1. 이반 뇌제

이반 뇌제(1530-1584)는 지치지 않고 봉건적 분열의 잔재와 싸웠던 투사이자 무자비한 통치자, 가장 많은 아내를 거느렸던 차르로 러시아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에게 정확히 몇 명의 아내가 있었는지를 두고 아직도 역사가들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 중 세 번의 결혼(다른 사료에 따르면 네 번)은 교회의 정식 허가를 받았다. 이반 뇌제에게는 교회가 인정하지 않은 세 명의 아내가 더 있었으며, 그외에도 수 많은 혼외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반 뇌제. 출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이반 뇌제. 출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차르의 신붓감은 전국에서 물색됐다. 귀족 가문의 규수 1500명 정도가 여러 차례에 걸쳐 모스크바로 올려 보내졌고 이반 뇌제가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신붓감을 직접 뽑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내와 그가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번째 아내 아나스타시야 자하리나-유리예바와 두 번째 아내 마리야 템루코브나만이 예외였다. 연대기 기록에 따르면, 이반 뇌제가 가장 사랑한 부인은 첫 번째 아내로 13년을 함께 살았으며, 두 번째 아내와는 8년을 함께 지냈다. 차르는 모반을 꾀한 귀족들이 자신이 사랑한 두 아내를 음독 살해했다고 믿었다.

그의 아내들은 모두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일부는 젊어서 죽었고(아나스타시야는 30세, 마리야는 25세에 죽었다), 일부는 수녀원에 유폐됐다.

2. 표트르 대제

로마노프 왕조 사상 가장 뛰어난 차르였던 표트르 대제(1672-1725)의 연애사 또한 복잡하다. 동시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여성 편력이 심했다. ‘로마노프 가의 비공식 삶.차르의 데카메론’라는 책에는 “폐하께서는 여성을 좋아하셨다”라고 써 있다. 그는 두 번 정식 결혼을 했으며, 아내들을 각별히 사랑했다. 그러나 17세에 결혼한 첫 번째 아내 예브도키야 로푸히나에 대한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의 측근들은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그 사랑은 한 해밖에 가지 못했다”고 썼다.

표트르 대제 (1717년). 출처: 뮌헨 박물관표트르 대제 (1717년). 출처: 뮌헨 박물관

두 번째 아내인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와의 사랑은 더 뜨거웠다. 그녀는 러시아-스웨덴 전쟁 당시 러시아 군대가 점령한 도시(현재 라트비아 서부)에 사는 성직자의 하녀였다. 그녀는 처음에 부사관의 연인이 됐다가 셰레메티예프 육군원수, 그 다음엔 표트르 대제의 전우인 알렉산드르 멘시코프를 거쳐 차르와 알게 되었다. 이 매력 넘치는 여인은 1711년 표트르 대제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예카테리나에게 보낸 150통의 편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차르의 여성 편력은 멈추지 않았다. 예카테리나 황후는 그의 여성 편력을 알고 있었지만,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3. 예카테리나 2세

예카테리나 2세. 출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예카테리나 2세. 출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가장 많은 연인을 둔 왕족으로 유명한 사람은 예카테리나 2세(1729-1796)다. 그녀의 남성 편력에 대해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문이 돌았다. 예카테리나 2세에게 몇 명의 연인이 있었는지를 조사한 학자들은 그녀가 34년의 재위 기간 동안 20명이 넘는 연인을 두었다고 주장한다.

가장 오랫 동안 여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은 호색한이자 뛰어난 장교 그리고리 오를로프였다. 그는 10년 이상 여제의 연인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여제는 그와 결혼까지 고려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포기했다.

여제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한 명의 남자는 그리고리 포촘킨 공작이었다. 그는 당대 가장 눈에 띄는 위정자 중 한 명으로 크림 한국의 병합에 큰 기여를 했다. 포촘킨은 여제의 총애 자리에서 밀려난 이후에도 여제에 대한 영향력은 잃지 않았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를 위해 자신의 ‘후계자들’을 직접 고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든 여제의 마지막 총애를 받은 플라톤 주보프는 오히려 무소불위의 포촘킨 공작이 총애를 잃는 데 일조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주보프와 생의 마지막 7년을 함께 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35세나 연하인 그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하지만 알렉상드르 뒤마가 썼듯이 예카테리나 2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총애하는 사람들에게 연인이기에 앞서 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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